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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의 씨네룩]'나랏말싸미', 한글 기원 더듬는 훈민정음 코드

박미애 기자I 2019.07.25 11:00:13

씨네LOOK…'나랏말싸미'
'신미 조력설'에 역사 왜곡 논란…만듦새 빼어나

‘나랏말싸미’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한글. 전 세계 수천 개 언어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로 세계적으로 그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 고유의 문자이다. 한글의 사용법 등을 담은 해설서(훈민정음 해례본)가 있으나 한글의 창제 원리는 여전히 미스터리하다. 그 비밀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추적한 훈민정음 코드, ‘나랏말싸미’가 관객을 만난다.

‘나랏말싸미’는 세종과 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한글 창제를 둘러싼 이야기다. 영화는 학계에서 유력하게 보는 세종 단독 창제가 아닌 불교계 신미가 관여를 했다는 설을 기초로 서사를 펼친다. 영화가 개봉 전에 역사 왜곡 논란이 인 배경이다.

‘나랏말싸미’는 자막으로 “다양한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로 옮겼다”고 밝힌다. 세종은 이순신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존경받은 위인이다. 한글 창제에 신미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가설이라 하더라도 정서상 공감을 얻기 쉽지 않을 터다. 실존 인물 신미가 아닌 차라리 가상의 인물로 설정을 했다면 지금과 또 다르게 해석되지 않았을까. 역사적 사실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랏말싸미’의 만듦새 자체는 빼어나기에 영화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아쉬움도 있다.

‘나랏말싸미’는 대규모 전투 같은 극적인 장치는 없다. 그러나 세종과 신미 그리고 승려들이 소리를 모으고 문자를 만드는 모습을 함께 좇는 과정은 추리소설 못지않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자극한다. 극에 빠져들어 보다 보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혀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가만히 소리를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고귀한 왕이 유신의 왕권 견제, 아내와 사별, 질병 등의 고충 속에서 낮은 곳을 향해 백성을 위한 문자인 한글을 만들어 반포할 때에는 가슴이 뻐근한 감동을 받는다. 한글의 창제 원리를 더듬는 이 드라마는,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종국에 이르러 뭉클하게 터뜨린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의 위대함 이면에 가려진 세종의 인간적 면모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과 차별된다. ‘나랏말싸미’의 세종은 짠한 마음도 일 정도로 정감 있게 그려졌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어떤 인물을 만나든 캐릭터에 생동감과 친근감을 불어넣는 송강호의 연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임금과 충돌도 불사하는 배짱 좋은 신미 역은 박해일이 연기했다. 신미는 “난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와라”는 세종의 말에 “나는 부처를 타고 갈 테니.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시라”며 맞받아친다.

말과 말이 부딪는 소리는, 때때로 주먹과 주먹이 부딪는 소리보다 더 강렬하게 파열음을 일으킨다. 세종과 신미의 팽팽한 기싸움도 흥미롭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신념과 욕망을 가진 이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대립을 넘어서 통합해나가는 과정은 싸워서 쟁취한 것 이상의 희열과 감동을 준다. ‘나랏말싸미’가 갈등과 반목의 벽을 깨지 못하는 오늘날에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더불어 세종, 신미보다 더 담대했던 장부 소헌왕후 전미선의 연기는 영화에 기품과 온기를 더했다. 소헌왕후의 마지막이 어쩐지 지난 달 유명을 달리한 그녀의 실제 삶과 오버랩돼 짙은 여운을 남긴다.

별점 ★★★☆(★ 5개 만점, ☆ 반점) 감독 조철현. 러닝타임 110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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