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모두가 사용하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국산 병따개 역사

박철근 기자I 2016.05.13 07:00:00

1990년대 ‘호프’ 문화와 함께 병따개 확산 이뤄져
오비맥주·하이트진로, 총 연간 500만개 이상 생산
병따개 제조 공장 역사는 남지 않아
국내 전문·대량 생산 병따개 공장, 단 한 곳

[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맥주 병따개의 역사는 아일랜드 출신 미국 이민자 윌리엄 페인터(1838~1906)가 1892년 우리가 현재 맥주 병뚜껑으로 사용하고 있는 ‘왕관형 병마개’에 대한 특허출원에 이어 1894년 이를 딸 병따개 특허를 취득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서양 음료·주류가 들어오면서 병따개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근대유흥문화가 발달하면서 맥주 소비가 증가했지만 그 수요량은 지금처럼 크진 않았다.

1970년대 생산되던 병따개(사진 왼쪽)와 1980년대 들어 생산되기 시작한 보급형 병따개. 사진=박경훈 기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산업화를 거치며 소주가 국민 술로 등극했다. 하지만 당시 병따개는 주점당 하나만 배치해뒀거나 일반 소비자들은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따는 게 보편화 돼 병따개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진 못했다. 1970년대까지 당시 병따개는 선물용이나 특수제작용도로 주로 생산됐다.

업계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이 맥주를 즐겼던 것은 소위 ‘호프’와 ‘치맥’문화가 확산 되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다.

맥주 수요가 늘면서 보급형 병따개 생산 역사도 1980년대가 돼서야 시작됐다. 이에 따라 병따개 모양도 조금씩 진화하고 변형됐다.

업계에 따르면 병따개 가격은 개당 100원대 후반에서 200원대다. 현재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000080) 양 주류회사가 각각 연간 250만여개씩 총 500만개 이상을 생산한다. 콜라·사이다 등 여타 음료업체의 병따개 생산은 이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병따개 생산과 관련된 주류회사의 기록은 사실상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맥주 회사 구매팀 직원이 바뀔 때마다 판촉물업체·병따개 생산업체 등 계약이 바뀌었고 회사에서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을 통해 찾을 수 있는 병따개 관련 기록은 1997년 대구의 한 공장에 국내 유일의 와인오프너 생산업체가 있었다는 정도다.

원창희 오비맥주 해외사업부문 부장은 “신입사원 시절이던 2000년대 초, 부산에 위치한 직원 2명의 공장을 가봤던 게 마지막 기억”이라고 말했다.

시중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병따개. 디자인등록 등의 이유로 서로 모양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박경훈 기자
2000년대 중반 오비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며 자연스레 병따개 발주도 줄었다. 마침 공장을 운영하던 노(老) 사장의 나이와 건강상태 등의 이유가 결합 돼 오비맥주의 국내 병따개 생산 역사는 막을 내렸다. 현재 오비맥주는 2006년경부터 판촉물 수입 업체를 통해 중국에서 완성된 병따개를 납품받는다.

하이트진로 역시 관련 역사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998년부터 현재까지 대아정밀에서 제품을 납품받아 국산 병따개 제조의 명맥을 잇고 있다. 병따개를 전문적이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유일하고도 마지막으로 남은 이곳의 경영사정도 좋지는 않다. 중국산 저가공세에 가격으로 대응할 수 없는 처지기 때문이다. 김영곤 대아정밀 부장은 “중국산 병따개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믿을 것은 품질밖에 없다”며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끊임없이 품질 향상에 몰두한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