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울리는 회계정책]내부회계 감사 준비에 中企 248곳 `멘붕`

이광수 기자I 2020.11.30 04:00:00

자산규모 5천억 이상 기업 내부회계 감사 진행중
"구체적인 평가 기준 없고 비용만 들어"
코스닥협회 "천억 미만 中企 감사 대상서 제외해야"

[이데일리 이광수 기자] A상장법인에서 회계 업무를 맡은 B씨는 최근 일주일에 2~3회 꼴로 야근을 한다. A사는 내부 회계 감사에 대비해 한 회계법인에 수억 원을 내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감사 담당 회계사가 해당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걸핏하면 수정이나 증빙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B씨는 “한 회계법인에 큰돈을 지불하고 시스템을 만들었더니 다른 회계법인에서 문제가 있다며 걸고넘어지는 상황”이라며 “명확한 기준 없는 내부 회계 감사 제도에 기업들만 치이고 있다”고 푸념했다.

29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의 회계 개혁 정책에 따라 올해부터 자산 5000억원 이상인 상장사 248개사가 처음으로 내부 회계 관리 제도 감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관련 비용과 업무 부담이 대폭 커졌다며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죽하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제기했을 정도다.

내부 회계 관리 제도는 회사 회계 업무에 대한 내부 통제 시스템으로, 회계 투명성 강화를 골자로 한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신외감법) 시행에 따라 모든 상장사가 단계적으로 감사를 받도록 규정이 강화됐다. 기업의 재무제표 오류와 횡령, 자금 유용 등 회계 부정을 막는다는 취지다.

내부 회계 감사를 새로 받게 된 상장사들은 A사 사례가 남 일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회계법인에 비싼 돈을 치르고 기껏 시스템을 구축했더니 다른 회계법인이 내부 회계 감사 ‘비적정’ 의견을 주는 사례도 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회계법인 간 기득권 싸움에 휘말린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중소 상장사들은 부족한 인력과 재원, 모호한 감사 기준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소형 상장사의 재무 담당 직원은 “중소기업 입장에선 재무제표 작성과 내부 통제 업무 모두 능숙한 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며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모범 규준)도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감사인 자의적 판단에 맡기는 규정이 많아서 이를 충족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이 배로 들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 회계 감사는 지난해 자산 2조원 이상인 대형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해 올해 자산 5000억원 이상 중소·중견 상장사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2023년부터는 모든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내부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규제 준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이 제도를 회계 투명성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상장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 비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들로 구성된 코스닥협회의 김종선 전무는 “내부 회계 관리 제도 감사를 먼저 시작한 미국도 시가총액 7500만 달러(약 830억원) 미만 중소기업은 감사를 영구 면제하고 있다”며 “최소한 자산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은 내부 회계 감사를 면제하는 등 제도의 연착륙을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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