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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도 무료 이용…평등 교육의 상징 '열린 유치원'

김보영 기자I 2018.01.12 06:30:00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노르웨이편]
교육 중심으로 유보통합…유치원 이용률 91%로 끌어올려
유치원 안 다녀도 무료 이용 가능한 '열린 유치원 개설
"모든 아동의 안전과 행복 보장은 나라의 의무"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지역에 위치한 고메루드 열린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즐기고 있다. (사진=고메루드 유치원 페이스북)
[오슬로(노르웨이)=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지역에 위치한 고메루드 유치원(Gommerud Apen Barnehage). 이곳 고메루드 유치원엔 원생들이 교육받고 생활하는 본관 외에 별도로 ‘열린 유치원’(오픈 바나하게·Apen Barnehage)이라고 불리는 별관이 있다.

열린 유치원은 이용하기 위해 사전 등록을 할 필요가 없고,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취학 전 아동과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다. 심지어 여행 중인 관광객이어도 언제든 열린 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다. 보육료를 내고 다니는 아이들과의 차별도 없다. 고메루드 유치원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30분 열린 유치원 아이들도 참여하는 야외수업을 한다. 심지어 때로는 함께 소풍을 떠나기도 한다.

마리냐 팔만(Marinjja Palmen) 고메루드 교사는 “일반 유치원 수업을 듣는 아이들과 학부모 외에 열린유치원을 찾는 가족만 매일 20~30쌍 정도”라고 귀띔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아동들을 위한 ‘열린유치원’을 각 지자체마다 3~5곳씩 설치했다. 열린유치원은 보통 국공립 유치원 내 부속시설 형식으로 마련돼 있으며 공립 유치원 원장과 교사들이 함께 관리한다.

열린 유치원 시설 이용 및 교육 프로그램은 무료이며, 해당 지자체가 공립 유치원과 연계해 직접 감독한다.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부모들과도 육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열린 유치원 내에는 다양한 놀이기구와 책, 장난감들이 비치돼 있고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식탁과 유아용 의자, 식기류, 간단한 스낵과 음료들이 준비돼 있다.

비리깃 프라이즈(Birgit Prydz) 고메루드 유치원 원장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아동들을 안전히 보호하고, 이민자 가족들의 원활한 지역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1990년대부터 열린 유치원을 운영해 왔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에서 4년 간 아이를 키운 회사원 신선미(34·여)씨는 “입장이나 이용시간 제한이 따로 없으며 전문성 있는 교사들의 지도 아래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고, 부모 입장에서도 또래의 자녀들이 있는 현지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육아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육부 중심으로 유보 통합한 노르웨이

열린 유치원은 노르웨이 정부가 추진해온 ‘평등한 교육’의 상징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모든 아동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먼저 보육시설을 통합하는 작업부터 추진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유치원(Barnehage)로 통합하고 초등학교 교육과 연계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한국의 보건복지부 격인 아동가족부(Ministry of Children and Family Affairs)가 맡아왔던 영유아 보육·교육 관리 및 감독업무를 2006년부터 교육연구부(Ministry of Educationa and Research)로 이관했다.

이어 1~5세 아동들의 유치원 등원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캠페인을 펼치는 등 계도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노르웨이 1~5세 아동들의 유치원 등원률은 2002년 65.9% 에서 지난해 91%로 15년만에 25.1%포인트 올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통합하고 유치원 등원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 것은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한 결정이다.

헨릭 닐슨(왼쪽) 아동청소년국 홍보담당관과 비요른 레셔 누란 아동청소년국 대표. (사진=김보영 기자)
아동복지 정책자문기관인 아동청소년국 비요른 레셔 누란(Bjørn Lescher-Nuland)대표는 “예전에는 초중고 교육과 어린이집 보육을 관리하는 정부부처가 달라 혼선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집 보육은 아동들이 초등학교 교육에 적응할 수 있게 사회화와 언어 습득 등에 도움을 주는 매우 중요한 교육 단계이자 보호 시스템이다. 우리는 모든 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집 교육도 초중고 교육과 같은 제도권 교육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의 유보통합 사례는 수년째 유보통합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르웨이는 민간 보육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노르웨이 교육연구부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기준 유치원 수는 5980개입니다. 이 중 국공립 유치원은 2966곳(49.6%), 사립 유치원은 3014곳(50.4%)이다.

비요른 대표는 “우수한 사립 유치원들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등 국공립 유치원 비중을 높이려 노력 중”이라며 “이미 국공립 유치원을 이용하는 아동들의 비중은 15만 777명(53.3%)으로 사립 유치원 이용 아동 수(13만 1872명)보다 많다”고 말했다.

다만 국공립과 사립 구분없이 모든 유치원의 보육료는 상한액이 2330크로네(NOK·원화 30만 9000원)로 동일하다. 또한 지자체는 사립, 국공립 구분없이 동일한 재정지원을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 지역에 위치한 고메루드 유치원 전경. (사진=김보영 기자)
◇ 모든 아동의 행복과 안정 보장이 목표

노르웨이 정부의 고민은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 나머지 9%의 아동들을 어떻게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보호하고 교육할 지 여부다. 일부 빈곤 가정과 이민자 가족들이 당장 부족한 가계 형편을 보충하고자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가정양육수당을 지급받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노르웨이 정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기관에 투자하는 예산의 비율은 8%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국가 중 4위다.

이에 비요른 대표는 “부모의 소득 수준과 가정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동들이 교육 기회를 박탈 당하거나 차별 받게 할 수 없다”며 “모든 아이들이 동등한 교육과 혜택을 누려야 이들이 추후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조금 느리고 비효율적이더라도 모든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해주자는 게 이 나라 복지의 가장 핵심이 되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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