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인류는 공멸을 피할 수 있을까

송길호 기자I 2022.01.20 06:15:00
[정덕현 문화평론가]한 천문학과 대학원생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천체 관측 중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혜성을 발견한다. 정확히 지구와 정면으로 충돌할 이 혜성은 약 6개월 후의 종말을 예고한다. 충격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억 배 규모라는 것. 그래서 백악관을 찾아 대통령까지 만나지만, 놀랍게도 이들이 걱정하는 건 중간선거다. 이들은 종말보다 이 사실이 일찍 발표되면 자신들이 중간선거에서 질 걸 걱정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돈 룩 업>이 블랙코미디로 담아낸 디스토피아는 그 첫 번째 풍경으로 속물화된 정치꾼들을 꼬집는다. 여러모로 대통령이 되자마자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 속에서, 정치꾼들은 예고된 종말 앞에서도 표를 얻는 일에만 혈안이다. 마치 종말을 막는다 해도 선거에서 지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식의 태도. 그래서 일단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인 말과 행동들로 이 중차대한 사안을 들고 온 과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물론 이 영화에서 다가오는 혜성이 야기할 종말적인 위기라는 상황은 우리가 처한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레타 툰베리가 그토록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고 설파하고 있지만 각국이 자국의 이익에 갇혀, 또 그 각국의 권력자들이 정치적 입지만을 먼저 생각해 마치 그런 위기는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 상황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이 영화 속 이야기는 현재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네 정치판에서도 은유되는 면이 있다. 표가 된다면 세대나 성별 갈등을 야기하는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갈라치기도 서슴지 않는 대선출마자들의 행동들이 그렇다. 이들은 그렇게 표를 만들기 위해 불러일으킨 갈등들이 향후 우리의 미래에 어떤 악영향과 사회적 위기 상황을 가져올 거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갈등을 하나의 전선으로 만들어 한 표라도 더 끌어와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표인지라, 그 이후의 일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심지어 아예 그런 위기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돈 룩 업>에서 대통령을 찾아간 과학자들이 실망한 후 찾은 곳은 언론이다. 정치가 그렇더라도 언론은 그래도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 하지만 ‘데일리 립’이라는 시사토크쇼에 출연한 과학자들은 또 한 번 뒤통수를 맞는다. 당장 지구 종말의 위기를 얘기하는데 MC들과 시청자들의 관심은 결별 소식으로 뜨거운 연예인 이야기에만 쏠린다. 결국 화가 난 디비아스키는 버럭 화를 내며 “아니 지금 제 말이 어렵나요?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라고요!”하고 소리친다. 그런데 MC들 반응이 압권이다. 이들은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게 다루는 게 그 방송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결국 디비아스키는 “우리 모두가 뒈질 거라는 게 100% 확실하다구요!”라며 방송 도중 스튜디오를 뛰쳐나간다. 흥미로운 건 이런 디비아스키의 외침조차 인터넷 밈이 되어 온갖 짤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도 우리 사회에서의 언론 풍경이 겹쳐진다. 정치권의 어떤 문제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의도적인 연예계 이슈들로 덮어지던 과거의 풍경은 물론이고, 대선에 중요할 수 있는 후보자들의 어떤 말들이 깊게 분석되기보다는 각종 짤이 되어 우스개로 소비되는 현실이 그렇다. 이번 대선은 특히 정책이 실종되고 대신 가족사 같은 사적 이슈들이 더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정책들이 마음에 들어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비호감이라 반대편을 투표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여기에는 언론들의 책임도 크다. 심지어 진영 논리에 빠져 자신들이 밀고 있는 후보의 과를 숨기고, 상대편의 과를 침소봉대해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일부 언론들에 국민들은 저 디비아스키처럼 분노를 터트린다. 그래서 SNS 같은 대안적인 미디어를 찾지만, 그 곳은 더한 행태를 보인다. 통제권을 벗어난 이들 미디어의 정치채널들은 진영논리에 빠져 자극적인 혐오 발언을 일삼고 때론 가짜뉴스까지 버젓이 내놓는 행태를 보인다.

<돈 룩 업>의 압권은 결국 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혜성이 지구 가까이 다가왔을 때 벌어진 “룩 업(올려다 봐)”과 “돈 룩 업(올려다보지 마)” 시위의 대결 장면이다. 해쉬태그를 타고 퍼지는 ‘룩 업’ 캠페인에 맞서 미국의 대통령은 대중들 앞에서 이렇게 연설한다. “저들이 왜 위를 올려다보라고 하는지 아세요? 왜인 줄 아세요? 여러분이 두려워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여러분을 올려다보게 하고, 여러분을 아래로 깔보려 하는 겁니다.”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 위기 상황조차 편 가르기를 통해 표심을 얻으려는 모습. 그 결과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공멸의 길이다.

<돈 룩 업>을 보다 보면 미래를 결정하는 어떤 정책들이 결코 달콤하기만 해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영화 속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불편한 진실’에 경청해야 한다는 걸 “즐거운 척 좀 그만해요.”라는 말로 일갈한다. 거대한 혜성이 다가오는 위기상황이 결코 즐거울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할 말을 제대로 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한다고.

이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도 새겨 들어야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표심을 위해 듣기 좋지만 실행은 가능할까 싶은 장밋빛 정책들만 쏟아낼 게 아니라, 우리의 위기를 직시하고 그 현실에 대해 할 말은 하는 모습. 표밭만 쳐다보느라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 다가올 먹구름과 변화들을 놓치지 않는 모습. 그런 모습은 불가능한 일일까. 저들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라도 쳐다보고 외쳐야 할 일이다. 올려다보라고. 좀 더 현실을 직시하라고. 당장의 땅(표밭)만 쳐다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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