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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만에 문 연 경복궁 계조당…왕세자의 공간을 만나다

이윤정 기자I 2023.11.23 05:30:00

왕실 정통성 상징하는 장소
철거→중건→일제때 다시 헐려
내부 전시공간으로 재탄생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최근 경복궁 동쪽 권역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복원공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계조당’이다. 목재 느낌이 물씬나는 외관에 겹처마 팔작지붕(여덟팔자(八字) 모양의 지붕)을 올려 웅장함을 더했다. 옛 모습 그대로 짓기 위해 국가무형문화재 수리기능자들이 힘을 보탰다. 번와장, 두석장, 석장 등의 장인들은 전통재료와 부재를 손으로 직접 만들어 작업하며 계조당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왕세자의 공간’인 경복궁 계조당이 110년 만에 문을 열었다. 계조당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집무 공간이자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장소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계조당을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오는 12월 18일까지 ‘왕세자의 공간, 경복궁 계조당’ 전시를 연다.

손은미 궁능유적본부 학예사는 계조당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계조당은 전적으로 왕세자를 위해 탄생된 건물이기 때문에 이번 전시의 주제를 왕세자로 정했다”며 “많은 분이 전시품을 보면서 실감나게 당시 왕세자의 삶을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경복궁 계조당 외관(사진=뉴시스).
왕세자 집무공간…일제강점기에 철거

계조당은 1443년 세종이 왕세자의 집무 공간으로 건립했다. 이곳을 처음 사용한 이는 훗날 문종이 된 왕세자다. 1442년 세종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며 왕세자가 업무를 대신하도록 하고 이듬해 전각을 지었다. 1421년 왕세자로 책봉된 문종은 1442년부터 세종이 세상을 떠나는 1450년까지 왕의 업무를 대신했다. 왕세자는 계조당에서 정무를 보기 전 신하들에게 인사를 받는 의례인 조창을 받았다. 또한 외국 사신을 접견하고, 왕세자의 생일을 비롯한 잔치를 열기도 했다.

계조당은 문종의 뜻에 따라 1452년 건물을 철거했다. 그러다 1860년대 후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었고, 당시 왕세자였던 순종(재위 1907∼1910)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1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선 왕실의 권위를 지우고 식민 통치 정당성을 알리는 조선물산공진회 행사를 준비하면서 완전히 철거된 것이다.

경복궁 계조당 내부 전시실 전경(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2018년 계조당지 발굴 조사를 진행한 후 북궐도, 조선고적도보 등 문헌을 참고해 복원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11월 기단과 월대를 포함한 석재 공사를 마쳤고 지난해부터 주요 목재를 마름질하고 조립해 복원을 마무리했다.

계조당 권역은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 앞에서 오른쪽 쪽문을 지나면 만나볼 수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조선 왕세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펼쳐진다. 왕세자 책봉 과정에서 임금이 왕세자에게 내리는 죽책, 교명, 도장을 복제한 유물 등 10여 점을 선보인다. 왕세자가 행차할 때 의장군(儀仗軍)이 들었던 깃발인 기린기와 당시 행렬 모습을 구현한 영상도 있다. 1651년 효종(재위 1649∼1659)이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내린 죽책에는 ‘좋은 성품을 갖추고 학문에 힘쓰라’는 당부가 담겨 있다.

계조당을 쓴 두 왕세자인 문종과 순종 관련 유물도 볼 수 있다. 역대 국왕의 글과 글씨를 모아 놓은 ‘열성어필’(列聖御筆)에 실린 문종의 글씨가 눈길을 끈다. 순종이 왕세자로 책봉될 당시인 1875년 만든 옥도장은 복제된 유물로 전시해 놓았다.

경복궁 계조당 내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옥인, 죽책, 교명(사진=문화재청).
경복궁 계조당 내부 전시실 전경(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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