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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K' 보다 우리 예술작품을 앞세우자

장병호 기자I 2023.09.23 09:00:00

[김신아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
해외 한국문화축제는 기억 못하지만
BTS·엑소 등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
지역성 지운 '태양의서커스' 좋은 예
국적 대신 예술가 브랜드화 앞장서야

한국의 문화예술이 해외를 사로잡고 있다. 대중예술은 물론 순수예술도 이제는 ‘한류’를 넘어 ‘K컬처’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 문화예술의 관심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국제문화교류 전문가인 김신아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보내온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외국인들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을 맞아 멤버들의 인터뷰를 엮은 책 ‘비욘드 더 스토리 : 텐 이어 레코드 오브 BTS’(BEYOND THE STORY: 10-YEAR RECORD OF BTS)‘를 구매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방인권 기자)
[김신아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 자신의 나라에서 열린 한국문화축제에 가봤다는 유학생에게 물었다.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니?” 돌아오는 답은 명쾌했다. “초대받았으니 가기는 했지만, 아니요.” 그리고 덧붙인다. “다양한 것을 보여줘 흥미롭기는 한데 한 번이면 족해요.”

그런데 예술경영을 공부하러 유학 온 학생들에게 “왜 한국으로 왔냐”고 물으면 80~90%는 “방탄소년단(BTS), 엑소(EXO) 등이 좋아서 문화산업이 궁금해졌고 엔터테인먼트 일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들 중 뮤지컬을 쫓아다니던 학생은 졸업 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한국 뮤지컬 판권을 사 중국에 유통하는 기획사를 차리기도 했다.

한국문화축제와 K팝, 이 차이를 눈치챘을 것이다. 길게 남는 것은 오로지 예술가와 작품이며, 따라서 국적을 앞세우기 보다는 예술가를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국문화향유가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번져 ‘한류’라는 말이 해외에서 먼저 나온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성과다. 하지만 전세계인이 일상으로 소비하는 명품은 브랜드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 나라를 찾아가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도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이제 예술가를 간판으로 달고 가자. ‘한류’와 ‘K’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마당이니 우리 브랜드에 남들이 열광하면 우아하게 웃으며 여유 부려 보자는 것이다. 명품을 수출하는 나라들처럼 말이다.

지난해 공연 시장 티켓판매액 1등, 가장 장사를 잘한 것은 ‘태양의서커스-뉴 알레그리아’다. 그런데 이 많은 관객 중 과연 몇 명이 어느 나라 작품인지를 궁금해했을까. 공연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도 굳이 캐나다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로지 ‘태양의서커스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다. 연 1500만명 관람, 매출 10억 달러에 더해 내년부터 2030년까지는 부산에도 상설공연팀을 만들기로 협의했다.

‘태양의서커스 뉴 알레그리아’의 한 장면.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전 세계 최초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1984년 시작된 공연예술마켓 시나르(Cinars) 설립자 알렝 파레(Alain Pare)는 “마켓 초기에 ‘태양의서커스’를 해외에 유통시키기 위해 매번 무대에 올리며 엄청나게 공들였다”고 회고했다. 마켓 20년을 기념하며 내놓은 자료에서는 퀘벡 예술가들이 자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4배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게 됐다며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태양의서커스’를 꼽기도 했다. 시나르는 처음부터 그가 은퇴한 지금도 캐나다 혹은 몬트리올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예술가와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 세계로 작품 유통 담당자들을 우르르 몰고 다닌다.

국제교류 전문가나 한국예술의 해외 유통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이나 ‘K’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대중문화만큼은 아니더라도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예술가들이 있으니 그 이름을 돋보이게 해주자는 것이다. 우리 미술계도 이름만으로 내로라하는 작가와 갤러리가 있고,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클래식 연주자들은 해외 유명 기획사들이 모셔갔으며,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도 한국인이 주역으로 활동한 지 오래됐다.

아직 대부분은 열악하고 객석에 한정된 유통에 의지해온 무대예술과 일부 성공한 예술가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무대예술도 다소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 무대를 벗어나기도 하며 다양한 유통방법을 모색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 배우들은 진작부터 매체를 넘나들었고 무용수와 연주자들도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문화 소비 덕분에 브랜드화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국가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되 박수는 브랜드가 받을 수 있도록 해주자.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가 전형적이던 국가 홍보 영상을 힙한 거리풍경으로 바꿔 재미있고 친근한 문화로 전환한 것처럼 말이다.

◇필자 소개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이사(2022~2025) △양천문화재단 이사장(2021~2022) △국립극장진흥재단 사무국장(2020)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사업본부장(2015~2020)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장(1999~2012) △세르반티노 축제 한국특집(2015), 밀라노 엑스포 한국주간 기념공연(2015), 한중일예술제(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특별공연(2014) 및 한-이태리 수교기념 공연(2013), 한-아랍·아프리카 문화축제(2007~2011) 등 총감독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 문화예술특별상(2021), 무용국제교류 발전상(2018), 해외문화홍보원장 표창(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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