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ESG 공시 의무화, 서두를 일 아니다

최훈길 기자I 2023.09.12 06:10:00

경총 의견서에 금융위 “ESG 연기 검토 無”
해외 투자자 우려, 정책 뒤집기 문제 고심
하지만 기업 준비 미흡, ESG 과속 우려 커
김주현 “시장 공감 없이는 정책 집행 안돼”
지속가능한 ESG 되려면 시장과 소통해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의무공시를 둘러싼 뒷말이 많아져서다. 금융위는 올해 4분기 중에 의무공시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 따라 코스피·코스닥 전체 상장사는 ESG 공시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업계 입장에선 새로운 규제가 생기는 것이니,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총대를 멨다. 경총은 금융위에 ESG 의무공시 연기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2025년으로 예정한 ESG 의무공시 최초 도입 시기를 적어도 3~4년가량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기업 상황을 고려할 때 2025년 도입 시 산업 현장과 자본시장의 대혼란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기업의 과도한 초기 비용부담 등 경영 부담도 호소했다.

금융위는 이 같은 ‘ESG 의무공시 연기’ 요청에 선을 긋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ESG 의무공시 연기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를 2026년으로 1년 유예한다는 관측도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민관 합동 회의체인 ESG 금융 추진단의 회의를 통해서도 연기를 검토를 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
업계 요청에도 금융위가 일단 선을 긋는 것은 두 가지 고민이 있어서다. 만약 3~4년 도입을 미룰 경우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이 ESG에 관심 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 국내 기업만 고려해 무작정 늦추면 ESG를 강조하는 국제 기류와 맞지 않는다. 수출 기업이 많은 우리나라에 장기적으론 독(毒)이다. 정책 신뢰·일관성 훼손도 고민이다.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주요 정책인 ESG를 2025년에 시행한다고 대내외 공표해 놓고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기업 현실이다. 의무공시를 해야 할 기업들 상당수가 준비가 안 돼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00개 대기업·중견기업 ESG 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율공시도 준비하지 않는 경우가 21%에 달했다. 자율공시를 하고 있는 기업 중에서도 내부 자체 인력을 통해 공시를 수행하는 곳은 9.4%에 그쳤다. ESG 전산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14%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기업들이 뭐했느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기업들의 답답함과 ESG 과속 우려도 크다. 일례로 ‘스코프3’ 배출량 공시 의무의 경우 대기업 협력업체까지 제조공정 전반의 온실가스 간접 배출량을 파악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부담이 큰 셈이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기업은 미래 환경 비용까지 추산해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관련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없어 삼성전자(005930) 등 대기업조차 제대로 된 공시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작년 7월11일 취임식에서 “정책을 만들어도 시장 참여자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제대로 집행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ESG 의무공시 관련해 △충분한 유예 기간 △명확하고 간소한 기준 제시를 요청했다. 예정된 정책 일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공감이다. ESG 공시가 규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의 발판이 되기 위한 금융위의 소통·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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