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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돈보다 수탁사 구하기 더 힘들다…AC들 골머리

김예린 기자I 2022.07.07 07:30:00

벤처펀드 결성 가능해졌지만, 수탁 못 맡겨 'OUT'
돈 끌어모아도 은행권 수탁 거절에 투자 줄어야
증권사 일부가 문 열어줘도 수수료 부담 커져
AC협회 "은행권과 대화 시작해 장단기 대안 마련"

[이데일리 김예린 기자] 돈을 투자할 출자자(LP)를 끌어모았으나 수탁기관을 찾지 못해 펀드를 조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액셀러레이터(AC)와 벤처캐피털(VC) 업계의 수탁 고충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일부 증권사들이 수탁 업무를 받아주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지만, 높은 수수료를 요구해 부담이 커진다는 불만도 감지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국내 AC인 M사는 100억원 규모 벤처투자조합(벤처펀드) 결성을 위해 5개 은행과 접촉했지만 거절당했다. 업무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다. 결국 M사는 다른 증권사에 다니는 지인 소개로 수탁 계약을 맺었다. 같은 규모의 벤처펀드를 결성하려던 P사는 은행마다 모태펀드만 진행 가능하다거나 기존 거래가 밀렸다는 이유로 수탁을 거절하자, 금감원 고위직 네트워킹을 이용해 계약을 따냈다. 20억원의 벤처펀드를 결성하려던 S사는 직원 전체가 인맥을 동원해 수탁기관에 로비했다. AC협회가 최근 국내 AC들을 실태 조사한 결과 드러난 일부 사례다.

거절당하기 일쑤…임시방편으로 펀드 쪼개기

6일 IB 업계에 따르면 많은 AC들이 수탁기관을 찾지 못해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0년 8월 벤처투자촉진법 시행 이후 AC도 벤처펀드 결성이 가능해지면서, AC들의 개인투자조합 및 벤처펀드 결성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수탁을 맡아줄 금융기관을 찾지 못해서다.

벤처펀드를 결성하려면 20억원 이상의 돈을 모으고, 이를 맡아줄 금융권과 수탁 계약을 맺어야 한다. 개인투자조합은 1억원 이상부터 결성 가능하지만 20억원 이상부터는 의무적으로 수탁을 맡겨야 한다. 수탁업무는 주로 은행과 증권사가 담당한다. 그러나 연간 수탁보수율은 펀드 설정액의 0.05%에 불과해 수익성이 낮고, 행정력도 많이 소요돼 펀드 규모가 작으면 수탁 업무를 맡아도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불법 운용 사태로 수탁사들의 리스크에 대한 책임 부담도 커지면서, 규모가 작은 펀드들 위주로 수탁업무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그로 인해 수탁을 맡기지 못해 펀드를 쪼개 투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AC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를 크게 결성하고 싶어도 20억원 이상이면 수탁을 맡겨야 하므로 개투조합 1·2· 3호를 결성해 쪼개기 운영을 하는 것”이라며 “조합을 등록, 운영, 청산하는 절차들이 배로 늘어 행정 낭비가 심하다”고 전했다.

AC만의 일은 아니다. VC 역시 중소형 및 신생 하우스들도 적지 않은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벤처투자 등 정책펀드의 경우 공익적인 목적도 있기에 상호협조 아래 큰 이슈 없이 수탁계약이 맺어지고 있다”면서도 “정책펀드가 아니고 100억원 규모 미만일 경우 대부분 은행권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증권사에서 일부 프로젝트 펀드를 대상으로 수탁 업무를 맡아주고 있지만, 수수료를 높게 받는다”며 “자본력 있는 VC들은 부담이 덜하더라도, 신생 루키 VC, AC는 체감온도가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열린 창업기획자 투자조합 수탁거부 대응방한 토론회의 모습. 사진=AC협회


첫 토론회 개최했지만 장기 대안은 마련해야

AC협회는 현안을 공유하고 대안을 찾고자 지난 1일 창업기획자 투자조합 수탁거부 대응방안 토론회를 개최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했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토론회에서 “은행의 수탁 거부로 2개 조합 결성에 차질을 빚으면서 투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올 초 돈을 다 모았고 투자처도 결정했으나 결국 수탁 이슈로 투자처 측에 사과하고 다른 투자자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대형 AC까지 펀드 조성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퓨처플레이 측은 “100억원대 규모 개투조합을 결성하고자 했으나 수탁을 받아주는 은행이 없었다”며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데, 해외 투자가 한 건이라도 있으면 받아줄 수 없다더라”고 전했다. 이어 “결국 훨씬 높은 수수료율로 증권사와 수탁 계약을 맺었다”고 덧붙였다.

AC협회는 토론회를 통해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수탁은행·증권사 공개 모집 통해 해당 지점과 독점 거래 △금융권 수탁업무 경감을 위한 중간조직 설치 △초기 창업투자조합 수탁 전문회사 설치 △금융권 및 금융권 대상자와 간담회 등이다.

다만 저마다 은행 및 증권사 참여를 유도할 유인책이 필요하고, 수탁 중간조직 및 수탁 전문회사 설치의 경우 해당 비즈니스를 하는 민간사업자와의 충돌 우려, 큰 규모 인건비 조달 방안 마련 등 검토 사항이 적지 않아 단기 적용하기 어렵다. 중기부 역시 은행·증권사 관리감독기관이 아닌 만큼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AC와 금융권 간 논의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입장이다. 당장 취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수수료 올리는 것도 한계…정부가 나서야

AC협회는 우선 7일 하나은행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향후 증권사, 은행과 대화해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은행권들의 수탁 거절 사유 가운데 핵심인 낮은 수수료율을 일부 높여 이슈를 해소한다는 전략으로, 업계 설문조사 통해서 어느 수준의 수수료율을 수용할 수 있는지 조율할 계획이다. AC협회 측은 “단기적으로 증권사와 은행들이 수탁 업무를 받아줄 수 있게끔 수수료율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수수료만 계속 올릴 순 없는 만큼 장기적 대안으로는 토론회에서 제안한 내용을 계속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증권사마다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고 은행권도 올리는 추세라 이미 조합 수익률에 영향을 줄 만큼 높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100억원 규모 이하 펀드는 수탁은행이 정액제로 수수료를 받게 하고, 나머지는 정부지원금을 주면 어떻겠느냐”며 “펀드 규모가 너무 작아 생기는 수탁은행 손실분을 세금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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