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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눅 들지 않는 '강심장 선율'에…클래식 본고장도 반했다

장병호 기자I 2022.06.09 06:30:00

[클래식 콩쿠르 연이은 우승 낭보, 그 비결은]
조성진 이후 한국인 편견 사라져
변방 아닌 서양 연주자와 동일시
우승 강박 없는 MZ세대 연주자
기량 온전히 발휘…존재감 부각
꾸준한 활동 위해 후원·지원해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연일 우승 낭보를 전하고 있다. 이미 해외 콩쿠르 우승 경험이 있는 연주자부터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연주자까지 우승자의 면모도 다채롭다. 대중문화에서 K팝과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면, 순수 예술 분야에선 이른바 ‘K클래식’이 서양 중심의 해외 클래식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29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폐막한 제12회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연주자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공식 페이스북)
양인모·최하영 등 세계적 권위 콩쿠르 석권

최근 열린 제12회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대회 최초 한국인 우승자가 탄생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가 시벨리우스 콩쿠르, 첼리스트 최하영(24)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양인모는 2015년 프레마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내외에 잘 알려진 연주자다. 최하영은 2011년 브람스 국제 콩쿠르 최연소 1위를 차지한 뒤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온 ‘숨은 실력자’다.

바이올리니스트 위재원(23)과 비올리스트 윤소희(27)는 1948년 창설된 ‘2022 워싱턴 국제 콩쿠르’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비올리스트 박하양(24)은 아시아 유일의 비올라 콩쿠르인 ‘2022 도쿄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첼리스트 김가은(20)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37회 어빙 클라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연주자로는 20년 만에 우승했다.

오는 18일(현지시간)까지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리는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한국인 연주자의 우승 및 입상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국인 참가자 김홍기(30), 박진형(26), 신창용(28), 임윤찬(18)이 준준결선에 이어 준결선까지 무사히 진출했다. 바로 이전에 열린 2017년 제15회 대회에서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우승을 차지한 바 있어 2년 연속 한국인 우승자 탄생 여부도 관심사다.

첼리스트 최하영의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장면. (사진=에투알클래식)
좋은 연주자 끊임없이 배출…“콩쿠르는 배움의 장”

이전에도 한국인 연주자의 콩쿠르 우승 사례는 다수 있었다. 서양을 중심으로 한 클래식계에서 한국인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선 콩쿠르 우승 경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특유의 교육열과 경쟁 문화가 콩쿠르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한 클래식 관계자는 “한국의 남다른 교육열은 영재 교육 등을 통해 실력 있는 연주자를 계속 배출할 수 있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며 “부모가 음악을 하는 자녀를 서포트하려는 의지도 외국보다 더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 또 다른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게 한국인 연주자들의 해외 콩쿠르 도전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됐다. 황장원 클래식평론가는 “조성진 이후 우리 연주자들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해외 콩쿠르 심사위원들도 이제는 한국 연주자를 아시아 변방에서 온 것이 아닌 서양 연주자와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려는 측면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은 MZ세대답게 우승에 대한 강박에 크게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도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양인모는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이후 “참가자들 사이에 견제는 없었고 서로를 통해 배우는 시간이 돼 콩쿠르의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지금의 젊은 연주자들은 우승에 매달리기보다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연습을 하며 성장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더 강하다”며 “콩쿠르를 배움의 장으로 여기다 보니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해 우승과 같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최근 서양에선 클래식 전공자가 많이 줄어들면서 그 빈자리를 동양인 연주자들이 채우고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콩쿠르 우승자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필요가 있는 지적이다. 황 평론가는 “콩쿠르 우승은 연주자 경력에 있어 시작 단계로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며 “콩쿠르 우승자들이 해외 유명 공연장과 연주단체에서 꾸준히 연주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후원이나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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