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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못 찾는 한일 갈등…"배상-과거사 문제 분리해야"

정다슬 기자I 2021.03.09 06:00:00

日 '취임 1년' 케이크에서 "미래지향적 관계" 묵묵부답으로
스가 총리 정치적 기반 없어 일본내 강경론 더 꺾기 어려워
4월 한일 보궐선거·야스쿠니 신사 참배…외교환경 악화
"ICJ行 현실성 높지 않아…정치적 용단 내려 피해자 설득해야"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2018년 5월 9일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축하 케이크를 받고 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흰색 리시안셔스와 붉은 장미, 푸른 팬지꽃으로 만든 태극 꽃장식이 놓여져 있다.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배상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해라”

한일 관계가 한치의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일단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한 사법부의 판결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봤다. 일단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존중해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책임을 지되,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 문제로 강조하며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하며 일본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같은 날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가토 가쓰노부 장관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코멘트는 삼가하겠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한국이 구체적인 대응책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강제 징용 문제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해법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테이블에 앉아 논의해보자”는 한국 정부와 달리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가져오지 않는 한, 테이블에는 앉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반대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먼저 손을 내밀었던 적도 있었다.

2018년 5월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취임 1주년 기념 케이크를 준비한 것은 당시 한일 관계의 역학 구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힘을 받으며 북미, 남북 관계의 개선이 기대되는 시점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아베 총리의 적극적인 구애였다. 그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고노 다로 당시 일본 외무상은 일본 외무상으로서는 14년 만에 현충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적폐 청산’을 내걸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하에 한일 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릴 가능성이 상존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2015년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밀실 합의라고 비판해왔다. 국내 여론 역시 비판적인 가운데 화해·치유 재단 이사진이 사퇴하며 재단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고, 2018년 9월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단 해산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며 한일 관계는 본격적인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이에 맞서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경제·안보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아베 총리가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나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취임 후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별다른 제스처를 보이지 않은 채 아베 전 내각의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나고 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스가 일본 총리가 오면 한일 관계가 풀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오히려 일본 외교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경우, 일본 내 강경론을 무시하고서라도 한일관계의 해법을 밀어붙일 힘이 있었지만 파벌도, 힘도 없는 스가 총리의 경우 이같은 강경론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양국 모두 한일 관계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공감대는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의견과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한국과 ‘한국 사법부의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 측의 입장이 철저하게 엇갈리고 있어 현실적으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오는 4월에는 서울·부산 보궐선거, 참·중의원 보궐 선거 등 한일 양국 모두 정치적 이벤트가 있어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4월은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도 있어 한일간 외교적 긴장도가 높아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용수 할머니를 중심으로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로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할머니는 지난 3일과 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위안부 문제를 ICJ에 제소하기 위해서는 한일이 특별합의를 체결해야 하는 만큼 이 역시 외교적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위안부 문제를 ICJ에 제소하자고 하면 일본은 징용 문제도 같이 하자고 해 오히려 전선이 넓혀질 수 있다”며 “정치적인 용단을 내려 피해자를 설득시키고 배상 문제를 먼저 풀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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