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정부-금융사, 가계부채 인식의 괴리

송길호 기자I 2021.10.15 06:15:00
[신성환 홍익대 경영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가계부채문제는 참으로 의아하다. 정부 및 경제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절대적 규모뿐만 아니라 증가 속도 또한 과도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다양한 형태의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가계부채의 증가율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가계가 지속적으로 차입을 원하고 금융회사는 가계에게 대출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부채에 대하여 가계와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인식과 정부의 인식이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왜 이런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는가?

우선 차입 주체인 가계가 지속적으로 차입을 희망하고 있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나마 설명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가계는 미래 소득 및 보유 자산으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차입한다. 그런데 미래 소득 및 자산가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 기대를 하는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차입이 증가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제시하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 중 대표적인 것들에 기억편의(memory bias)와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 특성이 있다. 기억편의란 최근의 경험에 지나치게 많은 가중치를 두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적 전염이란 다른 사람들에 영향을 받아 결국 같은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가 결합되는 경우 1990년대 초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사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들도 기억편의와 사회적 전염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여 진다.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차입을 희망하더라도 가계에 비해 훨씬 더 이성적이고 과학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 금융회사에 의해 차입 수요는 차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대출자가 시장에 대출자산을 매각해버리면 그만이었던 미국의 주택금융시스템과 매너리즘에 빠졌던 신용평가기관에 기인한다. 반면 국내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대출자산을 시장에 매각하지 않고 자신의 자산으로 유지하면서 원리금을 직접 회수해간다.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적고 신용평가기관이 개입할 여지도 별로 없다. 의아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정부 및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지속으로 경고하고 있는데 금융회사는 왜 지속적으로 대출을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는가? 금융회사들도 기억편의와 사회적 전염에 노출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낮은 연체율에 취해 대출부실화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도 아니라면 정부와 전문가들의 인식에 오류가 있는 것인가? 실제로 많은 국내 금융회사의 위험관리 담당자들은 가계부채로부터 자신들의 금융회사가 노출된 위험은 크지 않은데 정부의 강력한 대출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줄이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정책을 올바르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에 대한 금융회사의 인식과 정부의 인식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괴리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가계부채 정책이 금융회사의 가계부채에 대한 미시적 인식에만 의존할 경우 개별 논리가 맞아도 전체적으로는 논리가 맞지 않을 수 있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빠질 수 있다. 반면 정부의 거시적 인식에만 의존할 경우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바람직한 가계부채 정책은 금융회사가 스스로의 위험관리를 위해 대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조정하도록 유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회색코뿔소, 퍼펙트스톰 등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가계가 미래의 경제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가계부채 정책까지 이런 총론적 접근을 하면 곤란하다. 가계부채 정책의 생명은 정교함이고 이 정교함은 개별 차입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대출에 대한 판단을 하는 개별 금융회사의 대출 의사결정 프로세스로부터 나온다. 가계부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금융회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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