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사망사건 민간 이첩…어설픈 후속조치에 항명 논란까지[김관용의 軍界一學]

김관용 기자I 2023.08.05 08:00:00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으로 개정 군사법원법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작년 7월부터 바뀐 이 법 때문에 국방부와 해병대 간 의견차가 생기고, 불필요한 논란이 이는 모양새입니다.

사망사건·성범죄·입대 전 범죄 민간수사

문재인 정부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의 일환으로 군 사법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군 항소심을 민간법원으로 이관하고 △관할관·심판관 제도를 폐지하며 △1심 군사법원 및 군검찰의 독립성·공정성을 강화해 장병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국방부는 이를 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2020년 7월께 국회에 군사법원법 정부 입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 마다 생각들이 달라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 5월께 발생한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성범죄 피해 및 이에 따른 사망사건으로 급물살을 탔습니다.

이에 더해 2021년 8월 해군에서도 여자 부사관이 성범죄로 피해 여성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괴롭힘을 당하여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는 부랴부랴 군사법원법 개정을 추진했습니다. 수사·기소·재판이 모두 군 조직 내부에서 이뤄지는 현행법 체계가 피해자 인권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입니다.

지난 달 22일 해병대1사단에서 거행된 故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해병대)
2021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군사법원법은 ‘제 식구 감싸기’와 초동수사의 부실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군 성범죄를 처음부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재판토록 했습니다. 또 군인·군무원이 사망한 경우 그 원인이 된 범죄와 군인·군무원이 그 신분 취득 전에 저지른 범죄에 관한 재판권 역시 민간법원으로 이관토록 했습니다. 법이 시행된 지난 해 7월부터 이 3가지 유형의 범죄 혐의는 군이 아닌 민간 경찰이나 검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번 고 채 상병 사망사건의 수사 관할권이 경찰에 있다고 이야기 하는 이유입니다.

해병대 사망사건, 내부 수사단이 조사

그런데 이 사건 조사에 해병대 수사단이 동원됐습니다. 실종자 수색작전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구명조끼도 제공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복장 통일만을 강조한 이유, 군 수뇌부가 무리하게 수중 수색을 강행시켰다는 의혹, 안전 매뉴얼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처음부터 해병대 내부 조직이 조사에 투입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바뀐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망 사건의 원인이 되는 범죄, 즉 ‘과실치사’ 혐의로 민간 수사기관에서 처음부터 조사를 진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민간 경찰이 파악하기 어려운 지휘 체계 등 책임 소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군사경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민군 합동수사단을 만드는게 타당해 보이지만, 군 당국은 해병대 자체적으로 수사단을 꾸려 사고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 후 민간 경찰에 이첩토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은 자체 조사한 결과를 종합해 지난 달 31일 국회와 언론에 설명 후 경찰에 넘길 예정이었습니다. 이 일정은 지난 달 28일 고지됐습니다. 당시 해병대 측은 “수사관할권이 경찰에 있기 때문에 이첩 전 해병대 수사단에서 조사한 사건 처리 내용을 설명 후 수사는 지역 경찰에서 담당한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달 22일 해병대1사단 김대식관에서 거행된 故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 주요직위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해병대)
그러나 해병대 측은 발표 예정 시각 한 시간 전에 조사 결과 설명을 취소했습니다. 국방부 법무 검토 결과 수사 시작 전 구체적인 사건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됐을 경우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에 ‘석연찮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국방부는 “해병대 브리핑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브리핑을 취소한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됐던 고 채 상병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보인 이유입니다.

국민적 관심 사건인데…내부 갈등 모양새

게다가 해병대 수사단이 국방부 장관에 ‘항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당초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이를 재검토하기 위해 ‘대기’ 지시를 내렸는데, 지난 2일 해병대 수사단장이 민간 경찰에 조사 결과를 넘겨 버린 것입니다.

이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최초에 작성한 조사 결과에 혐의 관련 부분이 과도하게 특정돼 있어 자칫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법무 검토 의견을 듣고 뒤늦게 이첩 대기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특정 지휘관들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장은 이를 부적절한 조사 개입으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조사 결과 원안을 경찰에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해병대 수사단장을 직무 정지 및 보직 해임 조치했습니다.

이에 더해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장이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항명한 것으로 보고 입건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장이 경찰에 넘긴 조사 결과 역시 회수했습니다. 채 상병 사건을 둘러싸고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 간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국방부는 향후 조사 결과 검토를 거쳐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 사고와 관련한 과실 여부 또는 혐의 판단을 위해 조사했던 부대 관계자들에 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국방부는 민간 경찰이 추가 자료를 요구할 경우 기존 원본을 그대로 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러면 처음부터 모든 자료를 넘겨줘도 됐었다는 얘기여서 의아해집니다.

채 상병 사건 처리와 조사 결과 공개, 그리고 경찰 이첩 과정을 보면 핵심인 사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런지 의문입니다. 국방부는 이 장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하며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결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혹여나 재발방지 대책은 없고 책임 소재에 매몰돼 군에 생체기만 남기고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일’이 되지는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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