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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삼성전자 '0.000086%' 지분도 대주주라는 정부

김정민 기자I 2020.10.05 00:00:00

대주주 요건 3억원 하향시 삼성전자 5천주로도 대주주
작년말 결산 기준으로 대주주 최소 1만여명에 달할 듯

[이데일리 김정민 경제부장]0.000086%. 내년부터 세계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 대주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분율이다.

2017년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고쳐 대주주의 범위를 기존 25억원에서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 2021년 3억원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왔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과세원칙을 주식투자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주주 요건이 3억원으로 확대되면 삼성전자 지분을 0.000086%만 가지고 있어도 정부가 인정한 대주주가 된다. 9월 29일 장마감 기준 삼성전자 종가는 5만8200원. 시가총액은 347조 4413억원이다.

3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대주주 숫자는 대략 1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말 결산기준 삼성전자 주식을 5000주에서 1만주 사이 보유 주주가 3980명, 1만주 이상 보유 주주가 7425명이다. 합산하면 총 1만1405명이다.

올들어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한 데다 본인 뿐 아니라, 부모·조부모·외조부모·자녀·친손자·외손자 등 직계존비속과 경영지배 관계 법인 등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합산해 계산하도록 한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월등히 많을 수 있다.

합산한 지분이 3억원 이상이면 주식을 가진 가족 모두가 대주주가 되기 때문이다. ‘대주주’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대주주 요건 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외에 크게 3가지 이유를 더 든다.

대주주 요건이 3억원으로 확대되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연말에 매물을 쏟아내는 사람들 때문에 주가가 폭락할 것이란 우려가 가장 크다. 득히 올들어 개인투자자가 급증한 탓에 대주주 요건 확대와 맞물려 충격파가 더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경수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국내외 주식시장 리스크 긴급 점검’ 보고서에서 개인들은 매년 12월에만 3조~5조원 수준의 대주주 요건 회피용으로 추정되는 순매도세를 보였다며 올해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모두 57조원의 순매수가 들어온 만큼 대주주 회피 물량은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합산 과세는 ‘현대판 연좌제’라는 불만이 많다. 독립된 세대가 각자 자기 돈으로 투자한 것을 왜 합산해 과세하냐는 것이다. 또 2023년부터 5000만원 이상 주식 양도소득에만 과세하기로 한 만큼 대주주 요건 확대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는 3년 전에 법으로 명시해 스케줄대로 추진해온 것을 일부 주식 투자자들이 반발한다는 이유로 아예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대주주 요건 3억원 확대는 유지한 채 합산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수준에서 무마할 생각인 듯하다.

정책 일관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법에도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게 있다. 누구도 예상못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동성 공급 확대로 자산 버블이 커질 때로 커진 상황이다. 주가 폭락은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악몽이 될 수 있다. 투자자들이 반발하는 포인트도 ‘세금’이 아니라 ‘주가’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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