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의 선비이야기]선비는 하루아침에 길러낼 수 없다

송길호 기자I 2021.07.23 05:5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 선비정신이 주목받는 계절이 다시 온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 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이 개인적 인연과 정치적 신념을 내세우며, 의리와 범절의 선비정신으로 나라에 큰 공헌을 한 분들의 연고지를 찾고 있다. 퇴계선생의 도산서원과 서애 류성룡 대감의 하회마을이 자주 가는 방문지가 되더니, 요즘은 일제 암흑기에 조국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살다 간 선비 후예들의 생가와 기념관에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전 재산을 팔고 수십 명의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가서 목숨 걸고 싸운 석주 이상룡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 그리고 17번이나 투옥되었던 퇴계 후손 이육사 시인과 서당에서 충과 효를 배워 다진 윤봉길 의사 등이 뉴스의 전면에 소환되고 있다. 방문 시의 발언이나 행보를 놓고 정치적 공방이 이어지긴 하지만, 위대한 분의 삶에서 알 수 있듯 고귀한 선비정신이 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 의해 다시 부상되는 것 같아 무척 반갑다.

필자는 예전보다 오늘날 선비정신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꾸준히 생각해 왔다. 대내적으로 보면 최근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타개하는 데 필요하다. 우리는 급속한 발전으로 훨씬 풍요롭고 자유로워졌지만, 자살률과 반목, 갈등이 지구촌 최고 수준이다. 이유가 뭘까? 남과 공동체를 배려하던 마음이 이기심과 돈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너나없이 염치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 늦기 전에 동방예의지국을 이끌던 지도자들의 선비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대외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국격, 즉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선비정신이 필요하다. 한류 문화가 20여 년 전부터 수출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고, 국익 증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K-드라마와 K-팝에 담긴 우리 고유의 콘텐츠에 세계가 감동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한 단계 더 도약하여 세계 지도자들이 빠져드는 수준 높은 한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세종대왕, 퇴계와 율곡, 충무공 등 문화선진국 조선을 이끈 지도자들의 솔선과 헌신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 그 방법이다.

이렇게 필요한 선비정신이지만 당장 되살려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지도층은 물론 국민 각자의 가치관과 삶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결국 사람을 바르게 하는 인성교육으로 귀착된다. 지식공부는 주입식으로 가능하지만 실천 하는 인성교육은 가슴으로 느끼게 하여야 한다. 김수한 추기경은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고 만년에 술회하였다. 쉽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웃어른의 감동 주는 실천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다.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과제다.

어렵다고 포기해서 안 되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얻으려는 것처럼 서둘러서도 안 된다. 지시나 명령, 규정과 제도의 변경으로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랫동안 존경받는 참선비가 어떻게 길러졌는지 역사에서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퇴계선생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퇴계는 높은 학문뿐 아니라 훌륭한 인품 때문에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찾는 인성교육의 등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퇴계는 어떻게 길러졌는가? 특이하게도 대학자인 퇴계는 스승이 없었다. 어릴 때 천자문을 가르쳐준 이웃 노인과 《논어》를 지도해준 숙부는 있었으나, 높은 경지로 이끌어 준 스승은 없었다고 퇴계 자신도 탄식했다.

퇴계에게는 집안 어른들의 영향이 가장 컸다. 태어나 7개월 만에 세상 뜬 아버지의 몫까지 하며 키워준 홀어머니의 불철주야 가족 뒷바라지를 보며 끊임없는 학구열과 공경과 섬김을 익혔다. 또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평생 단종을 향해 대의와 충절을 지킨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선비 퇴계의 참 공부는 이렇게 이어졌다. 이제 우리도 보고 따라 배우는 자녀와 후손들의 바람직한 삶을 이끌기 위해서 나부터 앞장서 실천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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