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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尹정부 ‘여성 홀대’ 우려스럽다

김미경 기자I 2022.03.24 06:10: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20대 여자’(시사IN북),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문학동네), ‘판을 까는 여자들’(한겨레출판), ‘을들의 당나귀 귀2’(후마니타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동녘)…. 올초 출간된 여성을 주제로 한 도서들이다.

‘여성 서사’는 요즘 출판계를 아우르는 열쇳말(키워드)이다. 기민하게 동시대적 이슈들을 써내려간 여성 작가 작품들이 연이어 발굴되고, 젠더 갈등이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연초부터 여성주의 관련 서적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최근 대선에서 드러난 혐오 정치와 젠더 갈라치기 현상이 출판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판계 한 관계자는 “이번 주만 하더라도 인문·과학·에세이·교양 등 비문학에 이르기까지 여성 관련 서적 30권 정도가 출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사진=이데일리DB).
해외 유력 언론들은 이번 한국 대선을 ‘젠더 전쟁’(gender war)으로 규정했다. 미국 타임지에서는 “어떻게 한국의 윤석열은 안티 페미니스트의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를 이용해 당선됐는가”(How South Korea’s Yoon Suk-yeol Capitalized on Anti-Feminist Backlash to Win the Presidency)라는 제목으로 대선 소식을 전했고, 영미권의 여러 외신도 윤석열 당선인이 ‘안티 페미니즘’을 활용해 당선됐다고 적었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기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고, 당선 후에도 폐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선 전날이자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8일에도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을 반복 게재해 성차별 쟁점을 지나치게 득표 전략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성을 향한 설득이나 설명의 방식은 없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려는 찰나다.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파견 공무원 184명의 최종 명단에는 여성가족부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앞서 인사혁신처는 지난 11일 인수위 파견 공무원을 추천하라고 각 부처에 전달했고, 여가부도 국장과 과장급 각 2명씩 추천했지만 배제됐다. 의도적 ‘패싱’(무시)이란 말이 나온다. 인수위원 24명 중 여성도 고작 4명에 불과하다. ‘능력 중심으로 뽑겠다’더니 어떤 기준이기에 ‘서울대, 50대, 남성’인 건가.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폐기물 동네에서 자라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본 경험이 있는 자, 실직자, 명퇴자, 성희롱 당해본 자를 원한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왜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미국의 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조이 레너드가 199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쓴 선언문적 시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의 일부다. 30년 전에 쓴 이 글은 여전히 절절하게 사무친다.

20대 대선에서 ‘최후의 부동층’이었던 2030 여성의 막판 표심은 ‘혐오 정치’에 대한 심판과도 같았다. 많은 데이터들이 ‘구조적 성차별’을 가리키고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는 윤 당선자의 인식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정치권의 셈법으로 인한 유탄은 결국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약자가 맞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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