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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의 사람이야기]'노조'가 주인공인 드라마

송길호 기자I 2021.07.01 05:50:00
[이근면 초대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권선징악 이야기를 통해 속 시원한 결말에 짜릿함을 느끼거나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보고 공감하거나 현실의 비유와 은유, 과장을 통해 치유의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상상 속의 일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시대를 느끼기도 한다. 혹은 막장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스토리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 어떠십니까?

올해로 어느덧 입사한 지 35년이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진작 정년퇴임 했어야 할 나이지만 노조의 강력한 투쟁의 결과로 정년이 5년이나 연장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지난 35년 동안 열심히 노조에 가입해 활동한 보람이 느껴진다. 노조는 나에겐 기댈 언덕이자 이 땅의 노동자들이 착취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유일한 희망이다. 노조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연봉 1억도 못 받으며 매일같이 야근에 특근에 잔업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진작 짤렸을 게 확실하다. 십 수 년 전 저성과자를 자르겠다고 회사가 칼을 뽑아들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어찌나 아찔한지. 내가 실적이 가장 낮다고 자르겠다고 하는데 세상에 등수가 낮다고 회사에서 자르는게 말이 되나? 서울대생 100명이 시험 쳐도 100등은 나오는 법이다. 그 때 노조가 강경하게 파업하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 실업자가 되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노조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파업하고 시위해서 그나마 이만큼 먹고 살게 된 것이다.

세상은 내가 속한 노조를 귀족노조라 욕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우리 노조 출신 선배들 여럿이 국회의원이 됐고 그 중엔 집권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있지만 자본가의 강고한 카르텔과 무시무시한 국가권력 앞엔 새 발의 피다. 이번에 노조 가입자격 요건을 바꿔 우리 회사 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노조에서 내보낸 걸 두고도 말이 많던데 억울하다. 우리보고 비정규직은 외면한 채 정규직 밥그릇만 챙긴다고 욕하지만 그건 비정규직 노조가 우리 정규직 노조의 말을 안 듣고 개별행동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아 또 얼마 전엔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비노조원들에게 우리 조합원들이 찾아가서 조금 세게 이야기했다고 그걸 또 테러라고 왜곡하는 기사도 났던데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욕도 좀 할 수 있고 어깨도 좀 밀칠 수 있는 것 아닌가? 언론의 호들갑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 그럴 시간에 회사가 노조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생산라인에 제공되던 와이파이를 끊은 만행을 고발하는 기사를 좀 쓰면 좋겠다. 노조가 열심히 투쟁해서 얻어낸 복지를 회사가 난데없이 끊어버리니 우리가 특근거부를 안할 수가 있나? 결국 사흘 만에 회사는 다시 와이파이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요 몇 년 간은 그래도 정부정책이 우리 노조가 그토록 목 놓아 외치던 것들을 담아내는 것 같아 뿌듯하다. 일주일에 52시간 이상 일 못하게 법으로 아예 못을 박고 최저임금도 팍팍 올리는 걸 보면 이제야 우리의 싸움이 조금 빛을 보는 것 같다. 자본가들과 보수 언론들이 주52시간제 통과되면 기업 망할 것처럼 엄살을 부리는데 우리가 매년 파업해봐서 아는데 회사가 그렇게 쉽게 안 망한다. 사람은 안 뽑으면서 일은 오래 시키려는 그런 못된 심보를 우리 노조가 앞장서서 꺾어버리고 더 많은 사람 뽑아서 돈도 더 많이 주라고 이번에 제대로 한 번 파업을 했으면 좋겠다. 생산라인에서 볼트만 열심히 조립해도 한 시간에 만오천원은 받을 수 있어야 그게 제대로 된 사회 아니겠나. 우리 노조의 이런 이상을 실현시켜 줄 정치인이 다음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힘 좀 팍팍 써야 할 텐데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걱정이다.

나는 노조가 참 좋다. 노조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짤리지도 않고, 월급도 오르고, 승진도 하는데 어떻게 노조를 안 좋아할 수 있겠나? 내 아들, 내 손자도 이런 좋은 노조에 들어와서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요즘 기업들이 자꾸 공장을 외국에 지으려 해서 큰일이다. 우리 회사만 해도 이번에 우리 공장에서 만들던 모델을 외국 공장으로 돌린다는데 좌시할 수 없다. 우리 공장 생산성이 낮다나 어쨌다나? 역대급 파업으로 손을 봐줘야 한다. 아 올해 우리 회사 적자폭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데 아무래도 그건 우리 봉급이 너무 적고 복지가 열악해서 그런 것 같은 느낌이다. 처우가 열악하면 아무래도 일할 의욕이 떨어지고 생산성도 낮아지지 않느냐 말이다. 그러니 매년 더 세게, 더 오래 파업을 해서 일자리도 만들고 월급도 올리고 복지도 늘려야겠다. 우리 후손들은 더 안락한 환경에서 더 많은 돈 받고 일하게 만들어 주는 게 시대의 사명 아니겠는가! 가자, 오늘도 파업이다!

이 드라마는 픽션일까? 현실일까?

세계는 하나의 경제 공동체이다. 평균적 경쟁력의 기반 위에 의식주와 생활에 소요되는 상품의 교역을 글로벌 단위의 분업 시스템으로 유지해 나가는게 현실이다. 각국은 펜데믹 이후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며 진짜 생존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고, 경제적 회복과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과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생산성 경쟁을 본격화하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 준비를 하고있는가? 세계가 어찌됐던 부동산 같은 국내 문제에 발목 잡혀 국가차원 문제는 뒷전이고 공직자의 일탈에 눈과 귀가 쏠릴 동안 정작 서민들은 영끌에 빚투에 전월세에 한숨짓고 있다. 대선레이스에선 무엇이 국가적 꿈이고 비전일까?가 아닌 누가 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니 전형적인 내부지향적 이슈와 쟁점이다. 세계적 흐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혁신적인 국가 경쟁력” 대책 마련에 실기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 2030년에 주력이 될 청년세대는 어떤 생각과 참여, 선택을 하게 될까?

이 노조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생각은 과연 세계적 기준에 부합될까? 아닌가? 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명제가 될 것이며 청년의 미래이며 내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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