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국립극장 콘텐츠 해외서 러브콜…K컬처 성장 기여했죠"[만났습니다]

장병호 기자I 2023.08.02 05:47:55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 인터뷰]①
주요 공연장 거친 36년 경력 예술행정가
K컬처, 문화예산 증액·민간 교류 활성화 필요
국립극장, 접근성 높이고 공연도 대폭 확대
해오름극장 상시 개방, 야외 행사도 신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K컬처’에는 방탄소년단 같은 K팝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 기반에 연극, 클래식과 같은 ‘기초예술’이 있었기에 ‘K컬처’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기초예술 또한 그 위상이 세계적으로 많이 높아졌습니다.”

36년 경력의 예술행정가 박인건(66) 국립극장 극장장이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K컬처’에 대한 생각이다. K팝, K무비 등 대중문화에서 시작한 ‘K컬처’ 열풍 이면에 순수예술(기초예술)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부인하기 힘들다. 세계적인 성과도 쏟아지고 있다. ‘K클래식’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시작으로 최근 바리톤 김태한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 우승까지 ‘K클래식’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이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전통의 현대화 또한 K컬처와 연결돼”

박 극장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 문화의 달라진 세계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박 극장장이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을 맡았던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오페라단을 초청하기 위해 당시 세종문화회관의 김신환 사장과 함께 현지를 방문했어요. 그런데 현지 관계자들 표정은 ‘여기에 왜 왔냐’는 듯 떨떠름했어요. 그만큼 한국의 기초예술이 외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거였죠.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로 있을 때 볼로냐오페라단이 먼저 한국을 찾아오더라고요. 해외 유수의 오페라단들은 이제 한국 성악가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박 극장장은 1987년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을 거쳐, 충무아트센터, 경기아트센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KBS교향악단, 부산문화회관,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사장 및 대표를 두루 거친 예술행정 전문가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받아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로부터 국립극장 극장장으로 임명됐다.

국립극장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극장이다. 국립극장 전속 예술단체인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다. 박 극장장은 국립극장이 추구하는 ‘전통의 현대화’ 또한 ‘K컬처’와 연결된다는 생각이다.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이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한국에서 전통예술이라고 하면 1945년의 예술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물놀이는 농악을 비튼 것으로 1978년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전통예술이 아니죠. 그러나 농악에서 나온 사물놀이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를 또다시 ‘난타’로 이어지면서 해외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국립극장이 ‘K컬처’에 기여하는 것 또한 ‘전통의 현대화’를 통해 해외와 부단히 교류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국립극장이 제작한 다수의 콘텐츠가 지난 몇 년 동안 해외에 소개돼 호평받았다. 올해도 중요한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창극단 대표 레퍼토리 ‘트로이의 여인들’은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청을 받아 오는 9~11일(현지시간) 에든버러 페스티벌 씨어터에서 현지 관객과 만난다. 한국의 사군자를 소재로 한 국립무용단 대표 레퍼토리 ‘묵향’은 오는 10월 캐나다 오타와 국립예술센터,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박 극장장은 “특히 한국의 창극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다”며 “영국 바비칸센터에서도 국립창극단에 러브콜을 보내와 내년 초청 공연을 논의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정부도 ‘K컬처’ 열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박 극장장은 “문화정책에서 정부가 할 일은 최대한 간섭 없이 지원하는 것”이라며 “정부 전체 예산에서 문화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대에 불과한데, 이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 교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극장장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민간 교류가 다시 활성화돼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 그리고 민간 차원의 활발한 교류가 ‘K컬처’의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했다.

박 극장장이 처음부터 예술행정 전문가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 처음 그가 선택한 것은 바이올린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바이올린을 잡았다. 경희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이후 연주자이자 공연기획자로 활동했다. 때마침 예술의전당이 클래식 음악 전공자 중 공연기획자를 찾는 것을 알게 돼 1987년 입사했다. 이듬해 예술의전당 개관을 준비하면서 예술행정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
“물과 기름 같은 ‘예술행정’, 균형 맞추는 것 중요”

예술행정에 대한 박 극장장의 생각은 명확하다. ‘예술’과 ‘행정’은 물과 기름처럼 쉽게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행정’이라고 하는 단어만 놓고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멋있죠. 하지만 이 둘은 쉽게 합쳐질 수 없습니다. ‘예술’은 결과가 중요하지만, ‘행정’은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예술가와 행정가는 서로의 생리를 이해할 수 없어요. 예술가의 입장에선 돈을 아끼지 않더라도 고급스러운 무대세트를 제작하는 게 중요하죠. 반면 행정가는 무대세트를 제작할 때 입찰을 통해 가장 저렴한 비용을 책정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예술과 행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것이 예술행정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박 극장장이 국립극장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국립극장의 접근성과 공연장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2층을 북카페로 만들어 상시 개방한다. 임기 동안 공연 횟수 연간 200회를 달성하는 것도 목표다. 공연기획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연기획부 내에 공연기획팀과 전속단체공연지원팀을 설치하는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야외 문화광장 행사도 확대한다. 기존 친환경채소시장 ‘아트 인 마르쉐’ 외에도 식물 마켓과 거리공연을 결합한 ‘아트 인 가든’, 북페어와 토크 콘서트를 결합한 ‘아트 인 북스’, 시민들과 함께 탈춤을 배우는 ‘아트 인 탈춤’을 새롭게 선보인다.

박 극장장은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 시절 ‘교향악축제’를 만든 장본인이다. 국립극장에서도 ‘교향악축제’처럼 브랜드로 자리 잡을 새로운 축제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하는 전국의 국공립 무용단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다. 박 극장장은 “실패할지 몰라도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3년 임기가 끝날 때 국립극장이 서비스도, 극장 가동률과 관객 점유율도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이 최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박 극장장은…

△1957년생 △경희대 음악대학 기악(바이올린 학사) △경희대 대학원 음악교육학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1987~1999)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1999~2004) △충무아트홀(현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 사장(2004~2006) △경기도문화의전당(현 경기아트센터) 사장(2006~2010)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2011~2012) △KBS교향악단 사장(2012~2015) △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2016~2018)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이사(2019~2022)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