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목멱칼럼]상속세 미술품 납부제의 전제조건

안승찬 기자I 2021.03.30 05:00:00

문화자산의 사회환원 기회, 국민에 문화혜택 줄 수 있어
일각선 조세회피용 의구심..10년넘게 도입 지지부진
물납제 공적 목표 충분히 해야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 이달 7일에 폐막한 2021 화랑미술제에는 4만8000명, 역대 최다 방문객이 다녀갔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임에도 5만 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렸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데에는 최근 ‘이건희 컬렉션’를 두고 논의되고 있는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 도입 논의도 한몫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하며 남긴 1만 3000여 점의 미술품이 미술계뿐만 아니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감정가액이 2조~3조원에 이르고 다른 상속재산까지 합치면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가 13조원에 가까운 상황을 두고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상속세 물납제는 미술계가 10년 넘게 주장해오고 있는 오랜 숙원 사업이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가의 입장에서는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이를 공공재로 환원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하게 되면 더욱 많은 국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더불어 미술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의 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이 자체 예산으로 구입하기보다는 대부분 기부와 기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건희 컬렉션’처럼 유수의 작품들을 국가가 확보해 내실 있는 미술관을 세워 다수가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은 진귀한 작품들의 보고(寶庫)이기에 상속인들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작품들을 해외 경매시장에 매각한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라고 주장한다. 피카소 작품의 해외 반출을 막으려고 피카소 작품으로 상속세를 물납해 만든 프랑스 피카소 미술관의 사례를 보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의 해외 반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납제의 필요성에도 10년이 넘도록 논의로만 그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미술품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미술품 수집을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국민적 반감을 해소하려면 물납제 도입의 목적과 취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단순히 상속인들을 위한 세금 납부 편의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문화적 자산을 확보하고, 국민이 문화유산을 공공재로 누리도록 하는 관점에서 제도를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령 물납을 할 수 있는 미술품의 조건을 결정하는 일도 물납제를 어떠한 관점에서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격을 기준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미술품을 물납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당장의 거래 빈도나 가격은 낮아도 예술사적 의미가 있는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는지는 물납제의 방향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납제 도입을 추진하며 항상 거론되는 프랑스나 영국 역시 단순한 편의 수단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국가적 중요 자산이 국내에 보존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상속인이나 특정인을 위한 개인적 차원의 혜택이 아니라 문화적 자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추진해 국민적 반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 장애물은 과연 미술품의 공정한 가격 책정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이나 시스템이 갖추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물납제를 긍정하면서도 미술품에 대한 객관적인 가격이나 가치를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국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입장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 미술 시장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나 감정의 전문성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고 감정과 관련한 잡음도 끊이질 않고 있다. 미술품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전문성이 확보되지 상황에서 섣부른 물납제 도입은 세수 감소나 사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술 시장의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확보, 공익 추구라는 뚜렷한 방향성이 바탕이 되어야 상속세 물납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제도 개선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문화적 향유 확대’를 위한 건전한 제도로써 결실을 맺길 바란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