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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N②] 역전의 전성기를 호출하다

강경록 기자I 2017.10.03 06:00:02

경북 영주 후생시장
한국관광공사 추천 10월 가볼만한 곳
글·사진= 박상준 여행작가

고추를 다듬는 후생시장 사람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북 영주시는 영주육교를 건너 시내로 진입한다. 영주 사람들이 ‘구름다리’라고 부르는 고가도로다. 고가 왼쪽은 철도 관사촌이다. 1973년까지 영주역이 인근에 있었다. 영주시 근현대는 철도와 함께 했다. ‘역전(驛前)의 역전(逆轉) 사업’은 그 흔적을 되살리려는 노력이다. 영주는 소백산, 부석사, 선비촌 등 조선 시대 이전 역사가 도시를 대표해왔다.

도로에서 본 후생시장 모습
◇경북 북부 교통의 요지였던 ‘영주역’

영주역은 1942년 문을 열며 경북 북부 교통의 요지로 떠올랐다. 후생시장은 1955년 역 가까이에 일본식 적산 가옥 형태를 빌려 개장했다. 1층은 가게, 2층은 살림집이다. 어깨를 맞댄 상가형 건물이라 다른 지역 적산 가옥과 구별된다. 거리와 얼굴을 맞댄 채 100m 정도 이어지고, 시장 뒤쪽으로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한다.

일대는 1970년대 초반까지 영주에서 가장 번화했다. 김정현의 장편소설 《고향사진관》에 나오는 사진관이 후생시장에 있었다. 양복점이나 의상실 간판도 옛 영화를 전한다. 한자리에서 20~30년은 기본이다. ‘여왕의상실’ 장복순 씨는 40년 넘게 옷을 만든다. “예전에는 같이 일하는 직원이 열 명이 넘었다”고 추억한다. ‘선비골인삼사과빵’은 영주 특산물로 만든 인삼빵과 사과빵을 낸다. 20년 역사니 이곳에선 아직 청년이다.

권태연 씨가 간직한 옛 명함
터줏대감은 단연 ‘가일제분소’ 권태연 씨다. 후생시장에서 60년 세월을 보냈다. 증거 대신 부적처럼 간직한 옛 서울 거래처 명함을 꺼내 보인다. 전화 국번이 한 자리인 옛날 명함이다. 권씨는 제대하고 청량리 고추 도매상에서 일하다가 영주로 돌아와서 고추 가게를 열었다. 고추는 기차로 청량리 도매상과 거래했다. 권씨는 자신이 “후생시장 고추 가게의 시초”라고 말한다. 그 후 고추 가게가 늘어났고, 후생시장은 곡물 시장에서 고추 시장으로 거듭났다고 덧붙인다. 고추 가게 도매상이 30㎡, 소매상이 6~10㎡ 규모이던 시절이다.

권씨의 증언에 따라 시장 뒷골목을 누빈다. 고추 시장은 영주역이 휴천동으로 이전한 뒤 쇠락했다. 후생시장 역시 운명을 같이했다. 이제 몇 남지 않은 점포 한쪽에서 고추 부대를 쌓아 올린 트럭이 떠날 준비를 한다. 주변으로 낡은 건물과 새롭게 단장한 건물이 어우러진다. 재생한 건물 역시 시간의 때는 벗겨냈어도 틀은 그대로 두었다. 덕분에 본래 자재와 새로 덧댄 목재가 반세기 넘는 시간을 잇는다.

분수대 앞 사거리
◇새로운 후생시장의 중심 ‘황금시대방송국 광장’

도시 재생 사업 이후 시장 라디오 방송을 하는 ‘황금시대방송국’ 뒤쪽 광장이 후생시장 중심이 되었다. 영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와 ‘빨간인형극장’이 광장을 품어 안았다. 서쪽 골목으로 몇 걸음 가니 ‘남서울식당’이다. 골목 구조가 옛 여인숙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옛 개성여인숙 자리다. 북쪽은 ‘청주집’이 건재하다. 대를 이은 대폿집으로 연탄구이가 별미다. 예전에는 그 사이로 고추 지게를 진 상인들이 바삐 오갔을 것이다. 후생(厚生)은 ‘넉넉하게 돕고 살자’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 정을 나누며 살던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눈가에 어른댄다. 좁은 골목을 뒤지며 옛 풍경을 그린다. 빈집들이 그사이 새 주인을 기다린다.

후생시장 동쪽은 분수대 앞 사거리 방면이다. 한때 영주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동네였다. 우회전하면 ‘영주의 명동’이라 불리던 거리다. 지금은 그 영화마저 가흥동 쪽으로 옮겨 갔다. 서쪽에는 중앙시장이 있다. 옛 영주역 자리에 1983년 뿌리내린 시장으로, 현재는 ‘생활 예술 만물상’으로 영주시는 이렇게 구도심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때는 골목시장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아케이드를 설치해 중앙시장과 큰 구분 없이 연결된다. 재래시장의 온기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국립산림휴양원 마실치유숲길
◇서천따라 이어진 영주의 모습

중앙시장에서 서쪽으로 500m 남짓 걸어가면 서천이 나온다. 영주의 한강 둔치 같은 곳이다. 하천변에 삼판서고택과 제민루가 있다. 삼판서고택은 정도전 생가로 판서 세 명을 배출한 집이다. 고택 옆 제민루는 조선 시대 백성을 위해 의료 사업을 펼친 흔적이다. 이곳에서 서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천 영주교 동쪽 제방 아래 자전거공원이 있다. 팻 바이크, 자전거 트레일러, 미니벨로 등을 오후 6시까지 무료로 대여한다. 무섬마을에 갈 때 이용하면 좋다.

무섬마을은 낙동강 3대 물돌이 마을이다. 해우당고택(경북민속문화재 92호)을 비롯해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 9채가 이곳의 자랑이다. 모래톱이 곱기로 소문난 내성천도 빼놓을 수 없다. 명물 외나무다리가 하천을 ‘S 자형’으로 크게 가로질러 운치를 더한다.

강변보다 숲을 원할 때는 소백산 자락의 국립산림치유원을 권한다. 단기 산림 치유 프로그램(1박 2일~3박 4일)에 참여하면 숙식과 치유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경험한다. 당일 방문 고객은 예약 후 건강증진센터(월요일 휴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치유숲길도 7개 조성해 깊고 그윽한 숲을 만끽하기 좋다.

따뜻한 물에 지친 몸을 담그고 싶다면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가 어떨까. 소백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탕이 매혹한다. 온천 옆은 인삼박물관이다. 10월 말에 경북영주풍기인삼축제가 열리니 때맞춰 여행 계획을 짜도 좋을 듯하다.

삼판서고택 대문 너머로 보이는 서천
◇여행메모

△당일 여행 코스=▷도시 재생 답사= 후생시장→중앙시장→자전거공원→무섬마을 ▷힐링 여행 코스= 후생시장→삼판서고택→제민루→국립산림치유원→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

△1박 2일 여행 코스= 후생시장→중앙시장→삼판서고택→제민루→국립산림치유원→(숙박)→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자전거공원→무섬마을→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

△가는길=중앙고속도로 풍기 IC→소백로→봉현교차로 영주 방면 좌회전→죽령로→가흥교차로 울진 방면 우회전→경북대로→가흥삼거리 영주경찰서 방면 우회전→신재로→서천교사거리 영주경찰서 방면→선비로→영주육교 진입→구성로→영주로→후생시장(영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먹을곳=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중앙분식(054-635-7376)의 쫄면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약선당(054-638-2728) 약선정식이, 영주축협한우플라자(054-631-8400)한우불고기가, 청주집(054-631-1680)에서 연탄불고기가 유명하다. 선물용으로는 선비골인삼사과빵(054-637-3892)에서 인삼빵이 좋다.

△주변 가볼 곳= 죽령 옛길, 선비촌, 소수서원, 부석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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