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2021 W페스타]김희 "'제철소에 여성 있을 수 없다'는 편견 깼다"

최영지 기자I 2021.10.15 05:20:00

'엔지니어 출신' 포스코 제철소 첫 여성 임원
26일 제10회 W페스타 연사로 무대 올라
"'여성, 제조업 현장서 일 할 수 없다는 것'은 오해"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전 세계적 과제인 탄소중립 만큼이나 여성 엔지니어 양성도 중요하다. 국가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여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제안하겠다.”

김희 포스코 생산기술전략실 생산기술기획그룹장은 슬라브정정공장장, 제강공장장 등을 거쳐 국내 제철소 최초 여성 임원으로 발탁됐다. 이제 그에게는 포스코뿐 아니라 국내·외 기업들의 과제인 탄소중립(Net Zero) 계획을 선도하고, 여성 후배들을 양성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김 그룹장은 최근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회사 밖에서도 중책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김희 포스코 생산기술전략실 생산기술기획그룹장은 오는 26일 열리는 제10회 W페스타에 연사로 참여한다.(사진=포스코 제공)


“‘제철소에 여성 있을 수 없다’는 편견 깼다”

2019년 사상 처음으로 제철소 여성 임원으로 승진한 김 그룹장은 현재 생산기술전략실에서 포스코가 주력으로 하는 철강제품 생산을 관리하는 수뇌부 임무를 맡고 있다. 글로벌 철강사를 중심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탄소중립과 관련해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 그는 제철소 현장에는 여성이 있을 수 없다는 선입견을 깬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서 과학기술 발전 전략과 이와 관련한 과학기술·인력 정책에 대해 대통령에게 자문하게 된다.

그는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포스코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자문을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해 포스코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석탄을 이용해 철광석을 녹이는 전통 고로방식에서 수소를 활용하는 철강공법인 수소환원제철공법으로의 단계적 전환계획도 밝힌 바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여성 엔지니어를 위한 정책에도 관심이 많다. 김 그룹장은 “육아가 여성 엔지니어 양성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회사나 국가 차원에서 임신과 육아휴직 제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후배들이 앞으로는 달라진 환경에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 역시 워킹맘으로 업무와 육아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출산 당시 두 달간의 휴가를 마치고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현장에 복귀해야만 했다. 김 그룹장은 “태풍이 오거나 화재가 났을 땐 다른 설비를 돌려 물량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열일 제쳐두고 공장으로 향했다”며 “딸 등교 준비를 못했던 적도 있고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던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직원 공채 1기…“여성의 섬세함으로 조직 운영”

그는 여성 직원 1기 공채 출신으로 지난 1990년 포스코에 발을 들였다. 홍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그룹장은 “이공계와 경영 관리를 합친 학문을 전공한 만큼 조금이라도 더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일로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입사했다”며 “당시 포스코가 대졸 공채로 여성 이공계 직군을 뽑은 덕분에 입사할 수 있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여성 엔지니어가 이렇게 적은지 몰랐다”고 밝혔다.

‘제조업 현장은 여성이 일할 수 없는 곳’이라는 편견에 대해 오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철강업이 톤(t)단위 설비를 관리하는 중후장대한 산업이다보니 철강 엔지니어로서 여성이라는 점이 마이너스가 될 것 같지만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장이 대부분 자동화, 기계화돼 있어 남성과 여성의 업무에 차별이나 제한이 거의 없다”며 “오히려 여성으로서의 섬세한 분석력과 직원들을 꼼꼼히 챙기는 리더십이 조직을 운영하는데 더욱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남성 중심의 업무 환경에서 그가 직면한 것은 남성이 여성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남성은 원리, 원칙을 중시하며 목표를 지향하는데 그런 점이 상대를 격려하고 다독이는 여성과는 달랐다”며 “동료들과의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해 남녀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나만의 리더십을 찾아 나갔다”고 말했다.

슬라브정정·제강공장장 거치며 현장 리더십 발휘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처음 리더의 보직을 맡았던 생산관제과장 시절이다. 생산관제과는 철강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통제하는 곳이다. 김 그룹장은 생산 일정과 작업량 배분, 물류 등 철강 공정의 전 과정을 살펴봤고, 이 가운데 생산 제약 요소를 파악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철강 공정의 전 부문을 살필 수 있는 업무였고, 이 업무가 관리자로서 일을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2010년에는 광양제철소 슬라브정정 공장장에 임명되며, 처음으로 공장장으로서 시험대에 올랐다. 공장 직원들의 주 업무는 슬라브정정을 통해 품질을 개선하는 일이었지만 그 당시 공장에선 품질 불량이 꽤 많이 나왔다. 김 그룹장은 “당시 직원들은 슬라브정정이 주요 공정이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면서도 “슬라브 정정 작업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불량률 증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꼬박 100일간 현장에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자들과 현장 설비를 보며 문제점을 하나씩 찾았다. 이후 작업자들의 조업 프로세스와 작업 기준 등 모든 업무를 개선하는데 힘썼다. 그는 “함께 한 직원들도 본인들이 하는 일이 제품 품질을 좌우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2제강 공장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광양 제철소가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그는 “포스코에 들어와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수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임원의 자리에 오게 됐다”며 “아직은 남성 중심인 조직에서 여성 후배들이 일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그룹장은 ‘리부트 유어 스토리(Reboot Your Story)-다시 쓰는 우리 이야기’를 주제로 오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10회 이데일리 W페스타의 ‘챕터2 도전 : 위대한 첫발’에서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금녀의 벽’으로 불리던 분야에 도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