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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해우소]잇단 택배 과로사…독소조항 12년째 그대로

황효원 기자I 2020.10.24 00:30:00

CJ대한통운 '분류작업 4천명 투입' 대책
산재보험 100% 가입도 권고 대책 내놨지만
'분류' 책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른 업체들 비슷한 조치 취할 수 있나 문제도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과로사에 시달리던 또 한명의 택배기사가 지난 21일 세상과 작별했다. 올해 들어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는 13번째, 이번 달에만 4번째다.

CJ대한통운 물류센터와 허브·서브터미널을 오가는 간선차량을 운전하던 노동자 강모(39)씨는 숨지기 하루 평균 21시간을 일터에서 보냈고 숨지기 전 8일간 제대로 퇴근도 하지 못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와 유가족을 통해 확인한 근무 기록을 보면 강씨는 2일간 22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일한 뒤 5시간만 쉬고 또다시 31시간 동안 연속으로 일하다 숨지는 등 살인적인 근무일정을 감당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돈주고 구역을 산다고?…독소조항 투성이 ‘노예계약서’

택배노동자들을 과로사로 이끄는 구조적인 원인은 택배 업계의 보증금과 권리금 강행을 꼽는다.

지난 20일 경남 창원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근무했던 40대 택배노동자 김모씨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유서에 “적은 수수료에 세금 등을 빼면 한 달에 200만도 벌지 못한다”며 “빚을 내서 택배를 시작 하다보니 세금, 월세 등으로 돈이 모두 나가 남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결국 김씨는 자신의 택배 차량에 구인광고까지 붙이고 다녔지만 수입이 적은 김씨의 구역을 맡으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 김씨가 속했던 강서지점이 다른 택배기사들과 작성한 계약서에는 ‘계약기간 내에 그만두면 택배기사는 위약금으로 1000만원을 로젠택배 지점에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다.

또 다른 계약서에는 계약을 중도 해지할 때 택배기사에게 손해 배상 책임을 묻는 한편 보증금도 반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지난 2월 이 구역에서 일을 시작했던 김씨는 택배 일을 시작한 뒤 대리점에 보증금 500만원, 권리금 300만원을 냈다.

택배연대노조는 “대리점이 택배기사와 계약을 할 때 그만두려면 후임자를 찾아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거나 후임자를 구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두면 한 달 이후에나 지급되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애초에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택배 기사의 산재보험 가입을 적극 권고해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되는 택배 기사들은 보험료를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내도록 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신청하면 보험료를 들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 탓에 택배 대리점, 기사들은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쓰는 게 관행이 됐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산재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한 택배기사는 10명 중 6명 꼴로 나타났다.

택배기사 과로 주범 ‘분류작업’ 이번엔 바뀔까

택배기사의 과로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바로 택배 배송시작 전 분류작업이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 사망 사태 책임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혔다. 지난 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잇단 택배노동자 사망에 사과하고 재발방치 대책을 발표했다.

기존 택배노동자·집배점주가 고용 비용을 부담해 근무 중인 1000여명의 분류인원에 더해 3000여명을 추가로 배치할 예정이다. CJ대한통운은 전체 대리점을 대상으로 택배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여부 조사도 실시한다. 신규 대리점은 위수탁계약을 맺을 때 기존 대리점은 재개약 때 “산재보험 100% 가입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택배노조 측이 요구해온 분류인력 추가 투입은 이뤄진 셈이지만 문제는 분류 작업의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업체들이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분류와 배송 책임을 분리해 표준계약서에 명시하는 생활물류법과 택배 노동자들의 산재 적용 제외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업계 간 이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 2013년부터 ‘산재보험 의무화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기업 부담이 커진다며 반발한 업계의 입김이 작용한 탓인데 노동계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측이 보험료를 부담하게 하고 ‘적용제외신청서’ 자체를 없애는 등 ‘독소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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