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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치밀한 설계 속 안정적인 앙상블에 압도

장병호 기자I 2024.03.25 05:25:00

-심사위원 리뷰
KBS교향악단 제799회 정기연주회 '한겨울밤의 꿈'
봄 사운드 전한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
전쟁 속 희망 담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800회를 눈앞에 둔 KBS교향악단의 제799회 정기연주회 ‘한겨울 밤의 꿈’(2월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과의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공연이다. 미하엘 잔데를링은 현재 루체른 심포니의 상임지휘자이며, 역사적인 지휘자 쿠르트 잔데를링(1912~2011)의 아들이기도 하다.

지난 2월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제799회 정기연주회 ‘한겨울밤의 꿈’의 한 장면. (사진=KBS교향악단)
1부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부터 잘 준비된 공연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협연자가 등장하기 전 반주만으로 그 기류가 달랐다. 최근 들었던 국내 오케스트라의 반주 중 가장 뛰어났다. 모차르트 음악은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이를 듣기 좋게 구성해 연주하는 건 어렵다. 말 그대로 ‘심플’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못 맞추거나 하나라도 음을 잘못 연주하면 음악 전체가 망가진다. 한국 오케스트라가 가장 연주하기 어려워하는 작곡가 역시 모차르트이기도 하다.

이날 공연에서 KBS교향악단은 미하일 잔데를링의 섬세한 접근으로 완성도 높은 모차르트를 연주했다. 악기 간 앙상블도 훌륭했다. 2악장에서 모든 악기가 일제히 포근한 봄 사운드를 만들어 낼 땐 KBS교향악단이 가진 기능의 최대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협연으로 참여한 오보이스트 프랑수와 를뢰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든 맥락에서 치밀하게 설계한 연주였다. 마치 사람이 말하거나 노래하는 것처럼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보에는 프랑수와 를뢰의 또 다른 입이었다. 센 소리 뿐만 아니라 여린 소리를 연주할 때도 오케스트라 전체를 압도했다. 오보에 소리를 가리려면 바이올린 400대가 필요하다는 말을 프랑수와 를뢰 본인이 증명했다. 다채로운 소리를 뽑아내 모차르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소리를 만들고 있는 게 단지 한 대의 오보에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지난 2월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제799회 정기연주회 ‘한겨울밤의 꿈’의 한 장면. (사진=KBS교향악단)
2부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이었다. 무대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며,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교향곡 중 가장 비극적인 작품이다. 시작부터 KBS교향악단의 탄탄한 연주력으로 음반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소리기 들려왔다. 폭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오케스트라 소리 속 절규하는 장면은 오디오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타악기까지 동원한 대규모 장면에서도 앙상블은 안정적이었다. 호른 수석을 비롯한 섹션별 수석들이 음악을 만드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공연이 열렸던 주말은 우크라이나 전쟁 2주기를 맞았기에 더욱 의미 있던 선곡이었다. 전쟁의 비극 그 자체를 담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으로 한 개인이 겪게 되는 비극은 비단 쇼스타코비치만의 것은 아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남들보다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월등했다. 그래서 이런 비극을 음악에 담을 수 있었고, 관객은 음악을 통해 그 비극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지휘자의 음악을 다루는 뛰어난 솜씨를 통해 관객은 전쟁의 비극을 몸소 겪은 쇼스타코비치의 깊은 내면으로 빠져들어 갔다.

마침내 음악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기도하며 조용히 마무리됐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남겼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레퀴엠을 써야만 했습니다. 끔찍한 학살 기계를 묘사하고 이에 대해 항의를 해야만 했습니다. 어둡고 악한 것은 모두 없어지고, 아름다움만이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지난 2월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제799회 정기연주회 ‘한겨울밤의 꿈’의 한 장면. (사진=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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