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발권력 동원해 자영업자 지원, 여당 요구 터무니없다

논설 위원I 2021.09.10 06:00:00
더불어민주당이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한국은행에 발권력 동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그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국은행에 대해 “소상공인 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하는 포용적 완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이 자영업자 등에게 대출하면 한은이 그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라는 요구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해야 할 몫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현재까지 여섯 차례 추경 편성을 통해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지원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면 정부에 추가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한은에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번짓수가 틀렸다. 민주당은 한은이 풍부한 발권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서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한은의 설립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법이 정한 역할의 범위를 넘어서는 위험한 발상이다. 한은이 영리기업이나 특정 계층에 발권력을 지원하는 선례를 남긴다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돈은 세금이지만 한은의 돈은 발권력 또는 유동성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돈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발권력은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남용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한국은행법은 물가 환율 등 통화가치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은이 매입할 수 있는 채권의 범위도 국채와 정부보증채권으로 제한된다. 민간기업이나 개인의 채권 매입은 금지되며 금융 시스템 위기와 같은 비상시에만 예외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쳐 허용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당국의 방역조치가 장기화 하면서 대면 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막대한 매출손실을 감수하며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여기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민주당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발권력 동원을 허용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도 내놓고 있다. 이는 더욱 위험한 시도다. 한번 발권력 봇물이 터지면 정치적 오 남용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중앙은행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은 자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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