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관의 워치독]최종구·윤석헌 ‘불편한 동거’…그 시작은

문승관 기자I 2019.02.04 06:00:00

2017년 12월 금융혁신위 방안 발표 후 충돌해
지난해 5월 윤석헌 원장 취임 후 '불편한 동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로 두 기관 갈등 표면화
갈등의 근본 원인 '수직적 이원화 구조'에 있어

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장이 지난 2017년8월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윤석헌(왼쪽)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현 금융감독원장)이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두 사람 뒤에 걸려 있는 ‘금융개혁 혼연일체’의 글이 눈에 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편집자주]워치독(watchdog)은 침입자가 나타나면 짖어서 주인에게 알려주는 감시견을 말합니다. 흔히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을 일컫는데요. 앞으로 여의도 증권가와 금융감독당국 안팎의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감시견의 눈으로 날카롭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불편한 동거’가 예견됐음을.

2017년8월24일 불볕더위를 식히는 빗줄기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적시는 가운데 금융위원회에서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 선출을 위한 열기로 가득했다. 치열한 논의 끝에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를 택했다.

닷새 후 최종구 위원장과 윤석헌 교수는 금융혁신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첫인사를 나눈다. 이 자리에서 윤 교수는 앞으로의 관계를 예고하듯 “아직 금융당국이나 금융권이 국민으로부터 크게 사랑받거나 충분한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강하게 꼬집었다.

그해 12월 최 위원장과 윤 혁신위원장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20일 윤 혁신위원은 혁신위 최종권고안을 발표하며 금융위 정책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21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최 위원장은 서운함을 드러냈다.

최 위원장은 “혁신위 권고안이 이 정도로 나올 줄 몰랐다”며 “어제 읽어보고 고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제별로 생각이 다르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기촉법 상시화,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인터넷전문은행과 은산분리, 초대형IB를 바라보는 시각,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등 쟁점이 될 만한 주요 이슈에서 엇갈렸다. 최 위원장의 간담회 후 이튿날 윤 혁신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운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윤 혁신위원장은 작정한 듯 속내를 풀어내며 금융 감독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5월 ‘불편한 동거’ 시작…사사건건 부딪혀

두 사람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인 지난해 5월 두 사람은 결국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윤 혁신위원장이 새로운 금융감독원장에 취임했기 때문이다. 윤 혁신위원장이 금감원장으로 내정되자 최 위원장이 불편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제 금융위 안팎에서는 최 위원장과 윤 원장 사이가 혁신위 최종 권고안 발표 후부터 냉기류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 금융위와 금감원은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키코 재조사, 케이뱅크 의혹 등 여러 사안에서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수차례 엇박자를 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 처리 이후 두 기관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계기라고 평가한다.

금융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관련해 삼성의 내부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금감원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증거물로 제출한 삼성 내부문건은 고의 분식회계 판단에 결정적 증거가 됐다. 증선위가 최종 결론을 내기 일주일 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문건을 공개했다. 금융위는 박 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출처를 금감원으로 본 것이다. 금감원과 박 의원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금융위의 계속된 추궁에 금감원은 내부감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15년 3월18일 임종룡(왼쪽) 금융위원장이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에게 ‘金融改革 渾然一體’(금융개혁 혼연일체) 휘호가 적힌 액자를 선물한 뒤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금융감독원)
◇“혼연일체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늘 삐걱댄 것은 아니다. 갈등이 불거진 건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선 수직적 관계가 마찰음 없이 유지·작동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양 기관 수뇌는 ‘혼연일체’를 외쳤다. 한솥밥 먹던 금융관료 출신이 금감원장 자리를 차지하던 흐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혼연일체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위에서 혼연일체를 외치는 동안 아래에서는 양 기관의 괴리감만 커졌다. 금감원에서는 금융위원회와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기류 탓에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금감원 임원을 지낸 A씨는 “두 기관은 그동안 수장을 비롯해 내부에서도 여러 문제로 갈등을 빚어 왔다”며 “과거 금감원 원장·수석부원장에 관료 출신이 배치돼 소위 말하는 ‘순치(길들이기)’가 됐는데 최초로 비관료 출신 원장이 오면서 예전처럼 되지 않다 보니 갈등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긴장관계야 옛날부터 좀 있었던 것”이라며 “금감원이 외부 통제를 잘 안 받아오다 좀 빡빡하게 하니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 순리로 풀어주길

갈등의 근본 원인은 수직적 이원화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다. 지도·감독을 하는 금융위가 금감원에 위탁하는 구조로서는 두 기관의 수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 구조”라고 지적한다. 갈등 와중에 양 수장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지만 마찰음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금감원 임원 인사를 두고 최 위원장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감독 수장 사이의 갈등이 ‘강 대 강’ 대결이 아닌 순리로 풀어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금융감독기능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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