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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껌'표 新로코]이미나 작가의 감성필력, 홀리지 않을 자 누구①

강민정 기자I 2015.10.31 08:30:00
‘풍선껌’ 스틸컷.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어렸을 때부터 가족같이 지내던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천진 낭만 로맨스. ‘풍선껌’을 설명하는 한 줄 문구다. 차별화된 로맨틱 코미디로 베일을 벗은 케이블채널 tvN 월화 미니시리즈 ‘풍선껌’(연출 김병수)은 ‘왜 우리는 모두 힘들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주인공마다 결핍을 하나씩 갖고 있다. 결핍을 채워가는 이야기에 앞서 원론적인 고민을 담았다. 결핍이 꼭 채워져야만 하나, 그렇지 않다면 살아갈 수 없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라디오작가 김행아(정려원 분), 한방병원 의사 박리환(이동국 분), 라디오국 본부장 강석준(이종혁 분), 재벌3세 치과의사 홍이슬(박희본 분),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박선영(배종옥 분). 주요 등장인물을 보면 저마다 직업이 있고 사회적 위치가 있다. 동시에 못난 구석이 있다. 남아있는 가족이 없어 영원한 내편도 없었다. 화법이 다른 이와의 사랑은 상처로 남았다. 모든 걸 가졌어도 내 마음대로 살찔 권리조차 없는 꼭두가시 인생도 산다. 방법을 몰라 진심을 늘 베일에 감춰두는 삶도 있다.

드라마다운 설정의 캐릭터지만 공감할 구석도 있다. 결핍엔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니까.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다 느껴지는 모든 상대적인 감정이 결핍으로 직결된다. ‘저 사람의 인생이 나와 같진 않아도, 나 역시 저 사람만큼 사랑에 서툴다’라고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가 ‘풍선껌’이다. ‘결핍’이라는 게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묘한 감성이 시청자를 홀리기 시작했다.

‘풍선껌’ 포스터.
△있는 그대로의 차별화

그간 접한 드라마에선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진 인물의 조화를 강조했다. 싸움을 붙였다가 화해를 시켰다. 서투르고 낯선 과정 끝에 진정한 하나가 돼 웃었다. ‘풍선껌’이 특별한 로맨틱 코미디라 자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작가의 말대로 ‘풍선껌’은 결핍을 가진 인물들을 완벽한 한쌍 혹은 공동체로 엮기보다 결핍 그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있다.

사실 ‘풍선껌’은 떠들썩한 관심을 산 기대작은 아니었다. 다만 ‘웰메이드’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나인’의 김병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인기 작품이자 좋은 작품을 제작한 화앤담픽쳐스의 신작이었다. 무엇보다 이미나 작가의 데뷔작이었다.

이 작가는 ‘아날로그 감성’의 우월함을 아는 인재로 통했다. 이 작가의 현장은 책과 라디오였다. 라디오 작가로 일했다. 그 토대로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책을 만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드라마 데뷔작인 ‘풍선껌’은 그런 이 작가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소해서 특별한 감성’으로 무장했다. 1,2회가 공개됐을 뿐인데 어록이 쏟아지고 있다. ‘이 안에 너 있다’와 같은 스트라이크도 아니고, ‘너무 섹시해요’와 같은 트렌디한 한방도 아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쏟아내는 속사포 대사로 시청자의 자연스러운 몰입을 끌어낸다.

‘풍선껌’ 이종혁 스틸컷.
△심장 저격 내레이션

“‘전화할게.’ 누군가는 그 말을 곧 전화기를 집어 들어 통화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해석했고, 누군가는 그 말을 지금은 일단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는 인사말로 사용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해서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헤어진다.”(1회, 이별한 행아와 석준의 일상을 보여주며)

“한 사람만 아플 수 있을까. 아무데도 말하지 못한 사람은 이미 혼자 아프다. 그 아픔을 방치했던 사람은 더 아프다.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르는 사람은 나중에 아프다.”(1회, 행아와 석준의 혼자된 일상을 보여주며)

내레이션은 탁월했다. 지난 방송에서 ‘풍선껌’은 박리환의 목소리로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내레이션을 선보였다. 씬을 연기하는 일만큼 힘든 ‘연기의 영역’이라는 내레이션. 상대방과의 연기 호흡에선 드러내지 않았던 특정 캐릭터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힌트 같은 존재다. 동시에 이야기 전체의 맥락을 짚어주고, 에피소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해주는 친절한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한다.

‘풍선껌’ 정려원 스틸컷.
△이별 혹은 사랑학개론

‘풍선껌’은 최고시청률 2%까지 돌파했다. 타깃 시청률에선 더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 중심에 이미나 작가가 풀어내는 이별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분위기다. 행아와 석준의 대사에서 그 대목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데 있어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내는 ‘오해’를 최소화해 시청자의 답답함을 해소했다. 솔직한 인물의 화법이 빛을 본 셈이다. 그 화법이 통한 명장면은 ‘날 힘들게 한 남자’에 대한 일갈이었다. 심지어 라임까지 꼭 맞춘 행아의 대사는 ‘언프리티 랩스타’를 보는 듯한 짜릿함까지 안겼다.

“항상 시간이 없다고 할 때 알아들었어야 됐어. 선배는 바쁜 게 아니라 나보다 다른 게 더 좋았던 거야. 아픈 날도 혼자 내버려뒀을 때 알아들었어야 됐어. 선배는 내가 아픈 걸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거였어. 사랑한다는 말 못하겠다고 했을 때 알아들었어야 됐어. 선배는 쑥스러운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기 싫었던 거야. 선배는 1초도 나 사랑한 적 없어. 나는! 내가 너무 시시해서 못 참겠어.”(2회, 끝까지 무심한 석준의 행동을 참지 못한 행아)

이 작가의 대본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 행아를 힘들게 한 석준 역시 진심이 있는 인물이다. 방식이 다를뿐, 그에게도 뜨거운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줬다. 자칫 ‘나쁜 남자’로 비춰질 수 있는 석준에게 ‘여심 홀릭’의 기회를 열어준 저력이 필력으로 발휘됐다.

“그렇게 마음 넓은 사람으로 보였니? 니가 나 좋아한다는 이유로 내 옆에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아니면 내가 만날 사람이 없어서? 같이 잘 여자가 없어서? 난 살까말까 할 땐 안 사. 먹을까 말까 할 땐 안 먹어. 왜? 난 일하기도 바쁘니까. 널 안 봐도 살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 그렇게 했을 거다.”(2회, 행아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석준)

‘풍선껌’ 제작진은 “남녀 감정을 세세하게 살려 표현해낸 이미나 작가 특유의 대사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관통한 것 같다”며 “매회 더욱 공감을 얻어낼 이미나 작가표 ‘대사’들을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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