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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취임 1년…문재인의 '금융개혁 카드' 통했나

박종오 기자I 2019.05.07 06:00:00

잇단 수장 사퇴에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 수습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결론 이끌어
금융사 내부통제·보험산업 혁신…금융위 벽에 막혀 좌절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현 정부 초대 금융감독원장인 최흥식 원장(채용 비리 연루 의혹으로 작년 3월 사퇴)에 이어 김기식 원장까지 ‘셀프기부’ 논란 등으로 사퇴 요구가 커지자 이렇게 호소했다. 한 달 새 금감원장 2명이 불명예 퇴진하게 된 초유의 사태에도 금융 개혁을 위해 이전 정부처럼 관료 출신을 금감원장에 앉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금융 개혁’을 이어갈 카드로 전격 임명한 원로 학자 출신 윤석헌(사진) 금감원장이 오는 8일 취임 1년을 맞는다. 윤 원장은 외부 논란을 최소화하는 ‘로우키’(절제된) 행보로 연이은 수장 사퇴로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다잡았지만, 아직 금융 개혁의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취임 1년 윤석헌, 조직 안정·현안 수습 ‘합격점’

윤 원장은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금융의 가장 큰 문제를 ‘관치(官治)’라고 지적하며 “낙후한 국내 금융 환경을 선진화 또는 정상화하는 것이 바로 금융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논리에 따른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금융 감독의 독립성을 확보해 급증하는 가계 부채를 방치하는 등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난 1년 윤 원장의 가장 큰 공(功)은 금감원 조직을 안정시키고 그가 생각하는 금융 감독 행정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이다. 취임 직후인 작년 7월 내놓은 금융회사 종합 검사 부활 등 윤석헌 표 ‘금융 감독 혁신 과제’도 이런 방향성에 초점을 맞췄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명 초기 ‘호랑이가 왔다’는 외부 세평과 달리 화려하거나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개혁 방안을 조용히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로우키’ 행보를 보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윤 원장 임명 직전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감리 결과 사전 통지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며 불거진 금융위원회와의 갈등을 수습하며 분식 회계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가 금감원장에 오기 전 착수한 금감원의 신한금융 채용 비리 검사,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부당 부과 사태 등도 큰 논란없이 매듭을 지었다.

반면 윤 원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신규 과제가 좌절되는 ‘쓴맛’도 봤다. 일례로 금감원이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해 주도적으로 마련한 ‘금융회사 내부 통제 혁신 방안’이나 ‘보험 산업 혁신 과제’ 등은 금감원 상급 기관인 금융위 벽에 부닥쳐 별다른 성과없이 마무리됐다.

TF에서 활동했던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금융 감독 체계에서는 금융위가 감독 규정 개정 권한을 갖고 금감원은 검사·제재만 할 수있다 보니 금감원이 나서서 시장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윤 원장이 금융위와의 교감 없이 제도 개선에 나섰다가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윤 원장이 기존 현안 수습 외에 뚜렷한 개혁의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감원의 한 퇴직자는 “윤 원장이 금융회사 검사나 제도 개선 등에서 아직 굵직굵직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종합검사·특사경 가동…향후 행보에 주목

금융 당국의 민간 금융회사 개입 등 관치 금융을 최대 문제점으로 지목했던 그가 올해 초 KEB하나은행장 연임 과정에서 또 다른 관치 논란을 초래한 것도 개운치 않은 대목이다. 고 교수는 “민간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감독권을 행사하면 그것이 바로 관치가 되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가 생기면 법과 규정에 반영해 제도적으로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윤 원장이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의 최우선 과제로 앞세운 보험사의 즉시연금 과소 지급 사태 해결이나 키코 피해 기업 구제 등은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강 교수는 “키코 사태의 경우 대법원 판결까지 난 마당에 금감원이 다시 피해 구제에 나서는 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금융회사 종합 검사, 금감원의 특별 사법 경찰 수사 등의 결과물이 향후 윤석헌 표 금융 개혁 성과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과거처럼 금융회사를 제재할 수 있는 법규 위반 사항을 먼지 털 듯 조사하는 이른바 ‘쌍끌이 검사’가 아니라 금융사의 문제점을 유발하는 전반적인 구조를 살펴보고 개선 방안을 찾는데 종합 검사의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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