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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크리스마스에 치킨 먹는 까닭은[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기자I 2021.12.25 06:00:00

전쟁 뒤 일본 주둔하던 미군부대 영향
케이크·치킨, 日크리스마스 전통음식化
'아시아의 미국' 되고자 하는 욕망 이용

일본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게 된 건 해외 주둔 미군부대만의 문화를 미국 전체의 문화로 착각한 탓이라는 진단이 나왔다(사진=이미지투데이)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찾는 음식이 두 가지 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크리스마스 치킨이다. 이러한 풍습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이 나오는데, 정작 미국에서는 이런 전통이 없어 주목된다.

일본이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는 이유는 착각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본 근대식문화연구회의 최근 진단이다. 1950년 12월24일,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도쿄 긴자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전쟁이 끝나고 연합국 점령군으로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병사들은 케이크를 장식하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1948년 요미우리신문은 미군부대용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대량 생산되는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이를 본 일본인들은 ‘케이크를 먹으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게 미국의 풍습’이라고 오인했다. 정작 미국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지만 말이다.

이후 미국은 1950년 과잉생산된 밀을 ‘원조’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민간기업이 밀 수입을 시작하면서 케이크를 자유롭게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됐으며, 미국의 문화를 동경하던 일본인들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기 위해 달려나갔다고 한다.

미군 부대가 크리스마스에 칠면조를 먹는 모습에 일본인들은 값비싼 칠면조 대신 구운 닭고기로 크리스마스 음식을 대체했다(사진=이미지투데이)
일본만의 ‘크리스마스 치킨’ 문화 역시 미군부대의 영향을 받았다.유럽에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고급 요리인 거위를 식탁에 올린다. 이후 미국 신대륙을 개척하며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이 거위보다 번식시키기 쉬운 칠면조를 먹기 시작했고, 전쟁 이후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미국 군인들에게도 냉동 칠면조가 배송됐다. 이를 목격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하면 칠면조’라는 인식이 퍼졌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당시 칠면조 가격은 1마리 5000엔에 달해, 대졸 공무원 초임이 1만4000엔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값비쌌다. 미국처럼 칠면조를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일본인들은 구운 닭고기로 이를 대체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KFC 치킨을 일본의 크리스마스 전통음식으로 만든 이가 1970년 일본에 진출한 KFC 1호점 점장, 오오카와 다케시다.

매장 근처의 한 기독교계 유치원에서 산타 복장을 하고 크리스마스용 치킨을 배달해달라는 요청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KFC 치킨을 먹는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그의 근거 없는 홍보가 일본 공영방송 NHK 전파를 타면서 일본에선 크리스마스 시즌에 팔리는 KFC 치킨이 월평균 매출의 10배에 달하면서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KFC 치킨을 먹는다”는 홍보로 인해 일본에서는 KFC 치킨이 크리스마스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사진=Japan Journeys)
크리스마스 전통 음식으로서의 케이크와 KFC는 ‘아시아의 미국’이 되고 싶은 그 시대 일본인들의 욕망과 이를 이용한 전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최근에는 달라지는 모양새다. 일부 젊은층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가 오래된 것의 상징으로 통하면서다.

토요게이자이는 24일 예전같지 않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전하며 “버블 경제 시대에 돈을 많이 쓰는 기념일이자 연인들을 위한 날이라는 이미지는 가성비를 중시하고 비연애로 돌아서는 젊은 세대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한 때 낯선 미국 문화를 향한 동경에서 열심히 소비하던 케이크와 치킨 역시도 이제는 일상적인 음식이 되어버린 탓에 특별함을 잃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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