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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 女학생' 머리채 뜯은 '폭행 할머니'[그해 오늘]

전재욱 기자I 2022.09.29 00:03:00

폭언과 폭행 뒤엉킨 2010년 9월29일 2호선 지하철
당사자 여학생·할머니 관계 두고 여러 사회해석 낳아
예의지국 먹칠, 선택적 예절, 非사회화, 초상권 침해
지하철 발생 범죄 하루 8건 고려 범죄에 노출된 일상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노인과 학생이 거칠게 서로 폭행하고 상대에게 폭언을 퍼부은 난투극이 2010년 9월29일(추정) 낮에 발생했다. 장소는 서울지하철 2호선 객실 안이었다. 당사자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다가 둘이 치고받았는지도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사건은 현장 승객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알려졌다. 누가 찍었고, 누가 올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반에 알려지고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동영상 캡처)
사건에 대한 반응은 ‘예의’에서 출발했다. 사건 초기 당사자 학생이 일부 ‘지하철 패륜녀’로 명명된 게 사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학생 잘못에 초점이 맞춰진 시각이다. 표면적으로는 ‘00녀’라는 여성비하 시각 표출이었지만, 이것도 ‘예의’라는 본질이 깔렸기에 가능했다. 그해 G20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동방예의지국 명성에 먹칠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어떤 전문가는 “하나만 낳아서 오냐오냐 키워 가정교육이 덜 된 탓”이라고 했다. ‘외동’(하나)과 ‘사랑’(오냐오냐)은 패륜의 절대 원인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용납할 수 없는 ‘예의 없음’에는 이유가 필요했다.

이렇듯 사건은 해석에 해석을 낳으면서 논란을 키워갔다. 그러다가 ‘예의는 위와 아래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반론이 붙었다. 예의가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일방으로 갖추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평소에 폭력적이었다’는 목격담이 붙으면서 논의는 확장했다. 출처가 불명확하다손 하더라도 예의의 대상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사건은 입소문을 계속 타면서 ‘패륜녀와 폭행 할머니’로 진화했다.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2호선 모습(사진=이미지투데이)
논의는 ‘왜 지하철 승객은 둘을 말리지 않는가’로까지 미쳤다. 앞서 예의네, 패륜이네 등을 따진 게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게 아니었던가. 사회화의 전제는 상호 작용이다. 위처럼 예의 없고 패륜적인 상황을 방관한 지하철 승객의 심리는 무엇이었는지 관심 대상이었다. 파편화된 모습조차 소극적인 사회화의 단면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붙었다.

동영상 촬영분이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 적극적인 사회화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관계에 물리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 다수가 관여하도록 유도해 공론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동영상 촬영과 게재 의도가 어쨌건 간에 영상은 심도 있는 관여를 이끌어낸 측면이 있다. 지하철이 일상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누구나가 언제든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환기돼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신원이 여과 없이 공개된 것이다. 얼굴과 목소리, 신체를 보면 당사자가 특정될 만큼 사생활이 노출됐다.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고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었다. 지금이야 상대 동의를 얻지 않은 동영상 촬영·활용은 서로 피곤해질 수 있다는 게 상식에 가깝지만, 당시만 해도 동영상 기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막 움트기 시작할 시절이라서 이런 인식이 부족해 보였다.

지난 4월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이 단전으로 운행이 중단된 모습.(사진=연합뉴스)
사실 이 사건은 알려져서 문제가 된 것이지 오래전부터 문제였는지 모른다. 일상이 펼쳐지는 지하철은 실제로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경찰범죄통계를 보면, 지난해 지하철에서 발생한 범죄는 2946건으로 전체 범죄 발생 장소의 0.2%를 차지한다. 1년 동안 하루에 범죄 8건이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셈이다. 가장 흔한 무단승차(점유이탈물 횡령 등 848건)를 제외하더라도 연간 2098건, 하루에 5.7건이다. 단일 범죄 가운데 강제추행 등 강력범죄(604건)가 가장 많고 상해·폭행 등 폭력범죄(450건)가 뒤를 잇는다. 공연음란죄 등 성풍속범죄(414건)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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