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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이재용에 "초격차 반칙" 일갈…'재벌 3·5법칙' 적용될까[판결왜그래]

김형환 기자I 2023.11.19 07:00:00

경영권 확보 위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檢 “공짜 경영권 승계…물산 가치 의도적↓”
父 구했던 재벌 3·5 법칙, 이재용도 구하나
이재용 “역량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 달라”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이번 사건은 각종 위법행위가 동원된 말 그대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입니다.”

검찰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재판장 박정제)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하면서 한 말입니다. 초격차란 ‘넘을 수 없는, 1등을 넘볼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삼성의 경영전략인데 이를 차용해 이 회장 및 삼성을 꼬집은 것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檢 “공짜 경영권 승계…물산 가치 의도적 낮춰”

그럼 이 회장은 무슨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받았을까요? 2014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건강 이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이에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필요했습니다. 삼성의 핵심은 결국 ‘삼성전자’. 그러나 당시 삼성전자는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삼성생명(032830)삼성물산(028260)이 2·3번째 주주였습니다. 삼성생명의 경우 이건희 당시 회장과 삼성물산이 전체 지분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사실상 삼성물산이 최대주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금부터는 검찰의 주장을 넣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검찰은 삼성이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하기로 결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프로젝트G(Governance)’. 이재용 당시 부회장은 삼성물산에 전혀 지분이 없었습니다. 프로젝트G의 핵심은 에버랜드였습니다. 이 당시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에버랜드 등을 상장시켜 제일모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 이 당시 부회장을 제일모직 최대 주주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당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주에 삼성물산 0.35주. 삼성물산의 매출 규모가 제일모직의 5.5배에 달하고 영업이익은 3배, 총자산은 3.1배에 달했는데 이같은 비율 산출은 다소 의아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입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는 낮췄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합병 과정에서 이 당시 부회장의 지분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가치는 높을수록,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을수록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당시 삼성물산은 카타르 발전소 공사 수주 등 호재가 있었는데 합병 이후 공개됐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활용됐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검찰은 이재용 회장 등에 대해 구형을 하며 이번 합병을 ‘공짜 경영권 승계’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父 이건희 구했던 ‘3·5법칙’, 子 이재용 구하나

물론 삼성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주주 등이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변호인은 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취약했던 삼성물산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변호인은 “합병 전 삼성물산은 그룹지분율이 낮아 경영권이 취약한 회사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일모직과 합병하면 취약한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삼성물산 합병 이후 삼성물산 외 다른 대형건설사들은 합병 발표시점을 기준으로 최대 50%까지 하락했으나 삼성물산은 경쟁사 대비 가장 소폭 하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합병 과정에서 아무런 불법적 행위가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회장 등이 유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이미 대법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용’이라고 판결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합병에 반대했던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기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사건에서 “이번 합병은 이 회장의 삼성그룹 지배권 강화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적시했습니다.

다만 이른바 ‘재벌 3·5 법칙’에 따라 실형을 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재벌 3·5 법칙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재벌 등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실형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2018년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비상장 계열사 법인자금 약 107억원을 박준경 금호석유(011780)화학 사장에게 담보 없이 낮은 이유로 빌려주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005380)그룹 명예회장,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 등 많은 재벌들이 3·5 법칙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이날 결심 공판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회장은 “대한민국 1등 기업에 걸맞게 높고 엄격한 기준과 잣대로 매사에 임했어야 했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며 “저는 합병 과정에서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적도 없고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기업,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과연 이 회장은 재벌 3·5 법칙에 따라 또 한 번의 기회를 받을 수 있을까요? 판결 선고일인 내년 1월 26일을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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