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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작은 이변조차 허락하지 않은 한국 양궁의 '완벽주의'

이석무 기자I 2021.08.02 01:00:00
한국 양궁대표팀은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장을 그대로 본따 진천선수촌에 제작된 훈련장에서 적응훈련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이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등극한 안산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방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빈틈없는 준비와 다양한 돌발변수에 대비한 덕분에 올림픽에서 꾸준히 최상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한국 양궁은 지난달 31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금메달 ‘5개 싹쓸이’에 딱 1개 놓친 4개의 금메달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6년 리우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전 종목 석권은 해내지 못했지만, 두 대회 연속으로 4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는 쾌거를 이뤘다.

사실 양궁은 변수와 이변이 많은 종목이다. 아무리 평소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경기 당일 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 많다. 활과 화살이라는 도구의 상태도 중요하다. 야외에서 경기가 열리는 만큼 날씨 등 외적 변수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한국 양궁이 어김없이 세계 최강을 지키는 밑바탕에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완벽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그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19 변수를 극복해야 했다. 올림픽이 1년 미뤄진 것은 물론 각종 국제대회도 잇따라 취소됐다. 대표 선수들로선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한양궁협회는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우선 지난 5월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바닷가 특별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이 이뤄진 신안군 자은도 두모체육공원은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경기가 열린 유메노시마 경기장과 입지조건 및 기후가 비슷했다.

대표 선수들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훈련하며 올림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악천후를 사전에 경험하고 대비했다. 실거리 훈련, 랭킹라운드, 모의 경기 등 올림픽과 동일한 경기방식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그 결과 도쿄올림픽 기간 내내 강한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협회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진촌선수촌에 아예 올림픽 경기장을 마련했다. 협회와 대한체육회 선수촌이 협력해 도쿄올림픽 경기장과 같은 세트를 진천선수촌에 설치했다. 대형 LED 전광판도 2세트나 갖다놓았다. LED 전광판 밝기를 조절해 선수가 타깃 조준시 발생할 수 있는 빛바램, 눈부심 등의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무관중 경기 환경에 대비해 200석의 빈 관람석을 설치했다. 미디어 적응을 위한 믹스트존을 운영하는 등 예상 가능한 모든 경기 환경을 연출했다. 경기 상황별 영어, 일본어 현장 아나운서 멘트를 비롯해 소음, 박수, 카메라 셔터 소리 등 효과음까지 제작해 현장감을 높였다.

올림픽 시 집중될 미디어에 대한 관심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 과정에서 전문 기자와 함께 인터뷰 연습도 진행했다. 경기 및 대화 관련해 예상 질문 및 답변을 미리 숙지하고 자기표현, 시선 처리, 발음 연습까지 함께 했다.

도쿄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안산(20·광주여대)이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둘러싼 ‘온라인 학대’에 대한 외신기자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경기력 외에 관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겠다”고 여유있게 받아넘긴 것도 미디어 훈련을 통해 단련된 덕분이었다.

심지어 양궁 대표팀은 대회 중 지진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지난 6월 충남 안전체험관에서 지진 체험 훈련까지 했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대비했기 때문에 작은 이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도쿄에서도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개인별로 특화된 명상 스마트폰 앱을 제공했다. 또한 경기 중간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최대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고급 캠핑용 침대, 에어매트, 의자, 안대, 손선풍기 등을 마련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완벽한 지원을 받는 한국 선수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신소재 원단을 활용한 유니폼도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남자 실업팀을 운영해 양궁을 잘 이해하는 코오롱이 제작을 맡았다. 도쿄의 고온다습한 도쿄의 여름 날씨에 대비해 자외선 차단, 흡한속건, 냉감 기능성을 가진 스트레치 소재를 사용했다.

협회 차원을 넘어 회장사인 현대자동차도 양궁 대표팀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우수한 화살을 선별하는 슈팅머신과 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해 선수 손에 꼭 맞게 만든 맞춤형 그립을 제공했다.

양궁대표팀은 혹시 있을 코로나19로 인한 응급 상황까지 대비했다. 도쿄올림픽 최종평가전 4~6위 선수 남녀 각각 5명이 뽑아 상비군을 별도로 운영했다. 이들은 4월까지 진천선수촌에서 대표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5월부터 올림픽 개막 전까지는 국군체육부대에서 별도로 훈련하면서 특별훈련 때 대표 선수들을 지원했다.

이승윤(광주남구청), 김필중(한국체대), 한우탁(인천계양구청), 이우석(코오롱), 박주영(서울시청. 이상 남자), 유수정(현대백화점), 임혜진(대전시체육회), 최민선(광주광역시청), 오예진(울산스포츠과학고), 정다소미(현대백화점. 이상 여자) 등 상비군 선수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도쿄올림픽의 성과도 불가능했다.

물론 한국 양궁의 완벽주의는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회장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의선 회장은 대한양궁협회를 위해 1년에 30~40억원씩 지원을 하고 있다. 금전적인 지원 뿐만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등 아낌없는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현장을 직접 찾은 정의선 회장은 관중석에 앉아 뙤약볕을 맞으며 선수들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대회 도중 불거진 온라인 이슈로 힘들어하던 안산에게 전화해 “믿고 있으니 경기를 잘 치르라”고 격려하는 등 ‘키다리 아저씨’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안산은 3관왕에 오른 뒤 “회장님 말씀이 도움이 됐다”면서 “아침에 회장님 전화를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견인한 대표팀 맏형 오진혁(40·현대제철)은 완벽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양궁은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다음 올림픽 준비에 들어간다”며 “이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1년 미뤄지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었다. 그 동안 더 치열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경기력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32회 도쿄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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