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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랑의매?…체벌에 한없이 관대했던 그시절 법원[그해 오늘]

한광범 기자I 2023.06.18 00:01:00

1976년 대법, 학생 사흘간 때린 교사에게 무죄 확정
"훈계 목적 약간 때린 정도…사회상규 벗어나지 않아"
느리게 변한 인식…2004년엔 '위법 체벌' 기준 제시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76년 6월 18일. 대법원은 교사의 학생 체벌에 대해 ‘훈계를 목적으로 약간 때리는 것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회적으로 체벌 폐지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런 분위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사회상규를 벗어나는’ 체벌에 한해서만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당시 학생 폭행 혐의로 기소된 30대 중학교 교사 A씨에게 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그렇다면 당시 대법원이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고, 훈계를 목적으로 약간 때렸다고 판단한 교사의 체벌은 어느 정도였을까.

A씨는 1971년 12월 자신이 교장 직무대리로 있던 중학교의 학생 7명이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이들을 사흘 동안 교장실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혔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주먹과 손바닥으로 머리와 얼굴 등을 수차례 때렸다.

3개월 정신신경증 치료 받게 해도 벌금형이던 그 시절

교사의 권위가 매우 높던 시절임에도, 한 학생의 학부모가 과도한 폭행에 격분했고 교장을 고소했다. 검찰도 A씨를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에서 A씨는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대법원도 2심 판단대로 A씨의 폭행은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은’ 정당한 체벌이라고 판단했다.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을 ‘몇 차례’ 때린 것은 사회관념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아울러 당일 다른 교사 B씨의 체벌 사건에선 유죄를 확정했다. 중학교 교사였던 B씨는 수업 중 책상에 엎드려 있다는 이유로 여학생의 머리와 어깨를 플라스틱 막대기로 때렸다. 머리를 맞은 학생은 이 일로 3개월 동안 정신 신경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대법원은 폭행치상죄로 기소된 B씨의 체벌이 사회상규를 벗어났다고 판단해 벌금 5000만원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그 이후에도 교사의 체벌을 법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지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한동안 1976년 판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속됐다.

1988년에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체벌 사건이 일어났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5학년 담임이었던 20대 여성 교사 C씨는 1988년 11월 시험을 치른 후 틀린 문항 수대로 학생들을 때렸다. 이 과정에서 한 학생이 이 교사의 체벌로 척추탈골이 발생해 전치 6주의 중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이 교사가 길이 50㎝, 지름 3㎝의 막대기로 엉덩이를 때리던 중 체벌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던 학생이 허리를 굽혔고, 막대기는 피해학생의 허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허리가 좋지 않았던 학생은 그대로 쓰러졌다.

피해학생 부모의 고소로 수사가 진행됐고, 검찰은 해당 교사에게 폭행치상죄를 적용하면서도 고작 벌금 3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이 교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교사 체벌에 대한 법원의 시각도 매우 느리게 변해갔다. (사진=이데일리)
1심 법원은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판결을 내린 판사는 “교사의 체벌행위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교육적 차원의 징계방법”이라며 “사회상규에 벗어난 폭력이라 하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실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체벌을 가했다는 해당 교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며 “(해당교사의 체벌은) 사회의 통상적 규범을 벗어나지 않은 정당행위”라고 판단했다.

1988년, 초등생 전치 6주 체벌에도 ‘교육적 차원’ 판단한 판사

학생이 중상을 입었는데 ‘교육적 차원’ 운운한 판결에 대해 당시에도 비판이 거셌다. 결국 법원은 2심에서 C씨의 폭행치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약식명령을 받았던 사건인 만큼, 당시엔 애초 약식명령 벌금을 뛰어넘는 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

2심은 “학생에게 전치 6주의 치료를 받아야 할 상처를 입힌 C씨의 행위는 징계의 방법과 정도에서 허용한도를 넘어선 것으로서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1990년 10월 해당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교사 단체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교원들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재심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반발하기도 했다.

법원은 그 이후에도 중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은 체벌에 대해선 관대하게 판결했다. 법원의 이 같은 시각 때문에 2000년대 초까지 교육 현장에서 ‘사랑의 매’를 빙자한 교사의 무지막지한 폭행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법원의 판단은 2000년대 들어 학생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법원은 2004년 판결을 통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체벌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다.

대법원은 당시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체벌 행위’로 △학생에게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리지 않은 채 지도교사의 감정에서 비롯된 지도행위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지도할 수 있음에도 낯선 사람들이 있는 데서 공개적으로 체벌·모욕을 가하는 행위 등을 들었다.

또 △학생의 신체나 정신건강에 위험한 물건, 교사가 신체를 이용해 부상의 위험성이 있는 부위를 때리는 행위 △학생의 성별·연령·개인 사정에 따라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준 행위 등을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체벌 행위’로 제시했다.

해당 판례 이후 체벌로 인한 교사들의 처벌이나 배상 판결은 크게 증가했다. 과거 유죄 판결에도 벌금형 정도에 그쳤던 처벌도 징역형이 선고될 정도로 강해졌다. 공무원인 교사들이 체벌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교사직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체벌금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며 2010년대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체벌은 금지됐다. 당시에도 일부 교육단체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훈육이 불가능해진다’며 체벌금지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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