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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세상서 나비돼 날으소서"…故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엄수(종합)

조해영 기자I 2019.02.01 12:27:46

서울 시청광장에서 일본대사관 앞까지 시민들과 행진
시민들 "할머니의 꿈 저희가 이뤄드리겠다"
일본대사관 앞서 영결식 마치고 망향의 동산 안치

일본의 공식 배상을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평화의 나라가 돼서, 다시는 이 땅에 무차별한 인생이 없어야 돼”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고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온 여성인권운동가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엄수됐다. 시민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에 이어 서울 시청광장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영결식에는 김 할머니의 마지막을 기억하려는 시민 발걸음이 이어졌다.

◇나비 닮은 모습으로…“천억 줘도 받을 수 없다” 목소리 울려퍼져

김 할머니를 모신 행렬은 이날 오전 6시 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발인을 마친 뒤 생전 머물렀던 평화의 우리집을 거쳐 오전 8시 40분쯤 시청광장에 도착했다. 검은색 운구차 앞에는 자주색과 흰색 나비 장식이 붙었다.

평화나비와 마리몬드 등 위안부 관련 시민사회단체 소속 시민들은 김 할머니의 나이에 해당하는 94개의 만장(애도의 글을 적어 만든 깃발)을 나눠 들고 운구차를 에워쌌다. 만장에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영웅 김복동’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등의 문구가 쓰였다.

행렬의 맨 앞은 보랏빛 배경으로 나비처럼 양팔을 벌리고 환히 웃고 있는 김 할머니의 그림이 이끌었다. 그 뒤를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영정을 들고 걸었고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와 진선민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뒤를 따랐다.

시청광장에서 일본대사관까지 1.3km를 이동하는 동안 행렬에는 김 할머니의 생전 육성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수요집회에서의 김 할머니의 발언을 담은 육성에서 할머니는 “우리가 이 돈 받으려고 싸웠나. 1000억원을 줘도 받을 수 없다. 당장 돌려보내라”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행렬은 오전 9시 45분쯤 일본대사관 건물 앞에서 잠시 멈췄다. 노란색 나비모양 깃발을 나눠 들고 행렬을 따른 시민들은 일본대사관 건물을 바라보며 함성과 함께 “일본은 공식 사죄하라”고 외쳤다. 한 시민은 김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멈춰 있는 동안 그 앞에 서서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인근 상점에서 일하던 시민도 잠시 나와 김 할머니가 세상과 작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1일 수요집회가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식 사과’ 외치던 일본대사관 앞서 마지막 작별 인사

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수요집회가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 앞이었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수요집회에 활발하게 참석해왔다.

본격적인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이용수 할머니는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우리는 열다섯 나이에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며 한 많은 세월을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반드시 (일본의) 공식 사죄과 법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며 “여전히 망언이 이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결식에서 김 할머니의 소개를 맡은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는 돌아오지 못하거나 익명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상징이 되어 살아오셨다”며 “거리에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인권운동가이고 국내외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호소해 오셨다”고 설명했다.

권미경 연세대의료원노조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할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딸이 어느덧 14살이 됐는데 딸의 뒷모습을 보며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나이가 14살이라는 사실이 떠오르곤 한다”며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도 재일조선인 학교라면 눈을 뜨고, 수요집회에도 나오시는 등 강인한 여성인권운동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권 위원장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 ‘엄마, 너무 아파’라고 외치던 순간이 기억난다”며 “지금은 고통 없는 세상에서 찾으시던 엄마를 만나서 훨훨 날아가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할머니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줬다”며 “꽃가마 타고 간 그 곳에선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 호상 인사에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김 할머니가 전쟁과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편견을 모두 이겨내고 마음속에서 희망의 나비로 되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진다”며 “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은 많은 이들을 보며 할머니의 죽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다음 주 수요집회에 할머니는 반드시 이곳에 찾아오실 것”이라며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외롭지 않도록 평화의 마음을 모아주신 시민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영결식을 통해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김복동 할머니는 화장 후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망향의 동산에는 앞서 세상과 작별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51분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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