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자녀 학대 의심' 학부모 요구에 CCTV 삭제한 어린이집 원장[사건프리즘]

이연호 기자I 2022.04.06 15:27:22

檢, 영유아보호법 위반 기소…1심 무죄→2심 벌금 500만 원 선고
대법 "영유아보호법은 영상 '훼손 당한' 자만 처벌" 파기환송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한 것을 의심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여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에 해당 기록을 삭제한 어린이집 원장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졌을까.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이데일리 DB.
어린이집 원장인 A씨는 지난 2017년 한 원생(당시 5세) 부모에게서 ‘담임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것 같으니 CCTV 녹화 내용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A씨는 해당 내용이 공개될 경우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공공형 어린이집 지정 취소를 받을 것을 우려해 해당 녹화 영상을 삭제했다. 수사 기관엔 하드디스크도 “버렸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A씨는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영유아보육법’은 주의 의무 위반으로 결과적으로 영상 정보를 훼손 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지, 이 사건처럼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 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영상 정보를 훼손 당한 자뿐만 아니라 스스로 훼손한 자도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A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그러나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 판결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법조문을 확장 해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처벌되는 자에 스스로 영상 정보를 훼손한 자까지 포함된다고 보는 것은 규정 체계나 취지에 비춰 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형사법 대원칙상 법조항을 폭넓게 해석할 수 없어 나온 당연한 판결로, 관계 당국과 국회의 ‘입법 미비’에 책임이 있다”며 “다만 검찰이 A씨를 ‘증거인멸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은 해당 범죄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