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온 그는 일본 원전, 헌법개정, 과거사 문제 등을 비판해온 진보 문인으로 평가받아왔다.
일본 출판사 고댠사가 별세 소식을 13일 발표했다. 고댠사는 발행인 명의로 이날 성명을 내고 “3월 3일 이른 시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이미 가족들이 치렀다”고 일본 교도통신 등은 보도했다.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오에 겐자부로는 도쿄 대학 불문과에 진학해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57년 등단해 23세 때인 이듬해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 당시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였다.
1994년엔 작품 ‘개인적 체험’으로 노벨문학상을 탔다. 일본 문학계가 이룬 두 번째 노벨문학상으로,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이은 26년 만에 쾌거였다.
그의 문학은 현실과 궤를 같이 했다. 전후 일본이 처한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었고, 천황제와 군국주의, 평화와 공존 등을 주제로 많은 글을 발표했다.
국내외 사회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1994년 12월 진행된 노벨 수상 연설에서 “(일본 헌법의) ‘영구평화’ 포기는 아시아인과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배반”이라고 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제2차대전의 패전을 겪은 일본이 재생하는 ‘정신적 지주’ 민주주의와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결의”라고도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듬해인 1995년 한국을 찾았을 때도 “일본에서 헌법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절대 반대’한다. 일본은 인류전체가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 명백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자간담회에서는 “일본 정부나 국민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군부 독재도 비판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는 와다 하루키 등 15명과 함께 군부 쿠테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문제를 두고는 실천적 지식인의 행보를 걸었다. 2011년 사카모토 류이치 등 일본의 문화계 저명인사들이 원전 철폐를 요구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였다. 앞서 2004년 반전 시민단체인 ‘헌법 9조 협회’를 만들어 일본 정부에 전쟁을 포기하는 내용의 평화헌법 조항 유지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