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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 없다'..에너지공기업 개편안 반대의견 '봇물'

김상윤 기자I 2016.05.20 20:14:39

"민간+정부 협업체제가 중요"
"통합시 리스크 집중될 우려"
정부안 빠진채 논의 헛돌아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한국석유공사의 해외 자원개발기능을 민간기관에 넘기거나 한국가스공사와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 민간, 학계, 에너지 공기업 모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개편안이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을 터는 데만 집중했을 뿐 중·장기적으로 자원개발정책을 어떤 식으로 끌고 갈지에 대한 큰 틀의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다. 저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공기업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마저 적극적인 투자를 나서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국가적 자원확보를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산·학·연 “현실성 없다”에 한 목소리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서울 역삼동 해외자원개발협회 8층 세미나실에서 ‘해외 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정부가 발주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연구용역 보고서는 석유·가스 자원개발 개편 방안으로 △석유 자원개발 기능 민관 이관 △석유 자원개발 전문회사 신설 △석유공사 자원개발 기능을 가스공사로 이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합 등 4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광물공사에 대해서는 △별도 자원개발 전문회사 신설 △자원개발 사업 민간 매각 등 2가지 안이 나왔다. (▶기사참고: ‘자원확보’ 대안없이 ‘부실털기’ 급급한 석유-가스공사 통폐합안)

구조 개편 당사자인 에너지공기업3사 모두 이번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재웅 석유공사 기획예산본부장은 “현재 같은 방안으로는 부채 등 재무적인 위기상황은 해소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유가하락에 따른 자원개발 리스크를 극복하긴 어렵다”면서 “리스크가 큰 자원개발 특성상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중장기적으로 원가절감 등 생산성 향상 방안이 더 부각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재무상황이 나은 가스공사의 고호준 해외사업처장도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통합되면 규모의 경제를 이뤄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긴 하겠지만, 국제경제 회복 및 유가 상승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원개발 리스크가 집중된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시너지 효과보다는 경영 효율성이 저하되는 역효과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기 광물자원공사 기획관리본부장은 “현재처럼 공기업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도 위축된 상황에서 개발기능을 민간기능에 이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 “일본과 중국도 정부가 투자 적기라고 발 벗고 나서고 있는 마당에 무조건 공공부문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기업 역시 개편방안에 달갑지 않은 반응이다. 공기업이 기본적으로 자원개발에 나서는 가운데 민간과 협업체제가 유지돼야 하는데 정부가 자원개발에 철수하려는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의 자원개발 역할을 키운다고 했지만 자원개발 리스크를 고려한 세제, 예산 등 정부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응규 LG상사 석유사업부 상무는 “에너지 공기업이 글로벌 메이저 석유개발업체에 비해 역량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과 같은 역량을 쌓는데 30여 년이 걸릴 만큼 자원개발사업은 전문성이 필요한데 이런 무형자산을 그냥 사장시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해외자원개발분야는 공공과 민간이 시장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다”며 “민간은 장기간 투자를 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부문과 협력해야 민간기업도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성욱 포스코 원료그룹장도 “자원개발 투자는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민간 중심으로 자원개발하려면 조세, 예산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성공불융자가 전액 삭감되는 등 민간기업에 대한 육성책도 없다”고 지적했다.

학계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자원개발은 불확실성이 높은데다 타산업에도 영향을 많이 주는 만큼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면서 “조직개편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원개발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펀더멘털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공기업 사장이 낙하산으로 임명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모두 자기 임기 내에 성과를 내는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태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도 “2000년대 중반 이후 과도한 성과중심으로 단기 사업을 추진한 것이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며 “공기업이 정치권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투자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회를 본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역시 “구조개편에 실제 정부의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야하는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면서 “공기업 경영평가 수준에 그쳤다”고 평가절하했다.

◇정부 의견 빠진 채 진행된 공청회..논의 헛돌아

산업부는 이번 용역보고서가 검토 대상일 뿐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은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달 최종 구조개편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안은 빠진 채 민간업체의 용역보고서 바탕으로 공청회가 진행돼 논의가 헛돌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공청회에 참관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최동민 보좌관은 “현재 용역보고서의 대안에 대해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정부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며 “정부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지만, 산업부 측은 별도의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공청회를 마무리 지었다.

한국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공기업 노조는 이날 공청회에 참석해 에너지 공기업의 구조개편 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김병수 석유공사 노조위원장은 “현재 개편안은 공기업의 부채를 숨기는 데만 급급한 방안”이라며 “국가가 해외자원개발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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