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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규제 "당장 韓타격 불가피…장비·소재 장기적 호재"

강경래 기자I 2019.07.02 10:24:30

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등 단기적 국산화 불가능
소재 이어 장비로 확전할 경우 추가 피해도 우려
다만 증착 등 반도체 장비는 이미 상당부분 국산화한 상황
"이번 계기로 소재 역시 중장기적 국산화 비율 높일 전망"

유진테크 저압 화학증착장비(LP CVD)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당장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국내 장비와 소재 기업들에게 있어 중장기적으론 호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2일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장비기업 관계자는 “이번에 일본에서 수출 제한조치가 이뤄진 3종 소재는 국내 업체들이 단기간에 국산화할 수 없는 제품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전방산업 대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번에 일본이 자국 제품을 무기화한 것을 지켜본 국내 대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소재와 장비 등에 있어 국산화율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일본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소재를 앞세워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압박하고 나섰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전방산업이 단기적인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후방산업에 속한 국내 소재와 장비 업체들에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3개 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3개 품목은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HF)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이다.

반도체 공정은 웨이퍼(원판) 위에 회로선폭을 그려 넣는 작업으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 웨이퍼 위에 필요한 물질을 입히는 증착공정(디포지션)을 거친 후 노광공정(리소그라피)을 통해 웨이퍼 위에 미세하게 회로선폭을 입힌다. 이후 회로선폭 이외에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식각(에칭)과 함께, 식각 후 이물질을 씻어내는 세정(클리닝) 등 추가적인 공정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이 같은 과정을 수 백 번 거친 후 하나의 기능을 하는 완제품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감광액으로 불리는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핵심공정인 노광공정을 수행하기 전 웨이퍼 위에 바르는 소재를 말한다. 불화수소는 노광공정 이후 진행하는 식각과 세정 등에 활용된다. 현재 포토레지스트는 저사양(로엔드)에 해당하는 ‘KrF’(불화크립톤)은 동진쎄미켐 등 국내 업체들이 생산 중이다. 문제는 고사양(하이엔드)에 속하는 ‘ArF’(불화아르곤), ‘EUV’(극자외선) 등은 시네츠와 TOK, JSR 등 일본 업체로부터 전량 수입한다는 점이다. 특히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는 10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회로선폭을 구현하는 데 필수다.

불화수소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불화수소는 솔브레인과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등이 생산 중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공통적으로 일본 업체와의 합작사를 통해 관련 제품을 생산한다. 일본 업체로부터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한 후 반도체 업체들에 공급하는 형태다. 때문에 이번 일본 경제산업성 조치로 관련 원재로 반입이 어려울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반도체보다 디스플레이에 주로 적용된다. 특히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적용해 기판이 휘어지는데 기여하는 소재다. 때문에 전 세계 중소형 OLED 시장 90% 이상을 점유하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에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반도체 소재에 이어 장비 등으로 제재조치를 확대할 경우 추가적인 피해도 예상된다.

일본 도쿄일렉트론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네덜란드 ASML에 이어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업계 3위권 업체다. 특히 반도체 증착장비 분야에서는 미국 램리서치와 함께 1위 자리를 다툰다. 도쿄일렉트론은 한국에 법인을 두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활발히 거래한다. 도쿄일렉트론 외에 시바우라, DNS(다이니폰스크린) 등은 세정과 현상 등 습식(웨트) 장비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다행히 반도체 장비는 소재와 달리 국산화가 상당부분 이뤄진 분야다. 특히 도쿄일렉트론이 강세를 보이는 증착장비 분야에는 이미 주성엔지니어링과 유진테크, 원익IPS, 테스(TES) 등 국내 업체들이 진입했다. 습식 장비 역시 디엠에스(DMS)와 케이씨텍 등이 강세를 보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 장비에 있어 같은 값이면 국산보다 일본과 미국 등 외산을 선호했다”며 “하지만 이번에 일본이 자국 소재 등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본 대기업들이 장비 국산화 비율을 더 높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장 국산화가 미진한 반도체 소재에 있어서도 대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동진쎄미켐과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등 국내 협력사로부터 도입하는 비중을 높이는 한편, 차세대 소재 공공개발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상무는 “단기적으로 볼 때 전방산업에 속한 대기업들이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하다”라며 “하지만 대기업들이 향후 소재와 장비에 있어 거래처를 다변화하는 한편, 국산화를 한층 강화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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