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 당시 남쪽의 호암산이 풍수상 골치로 떠오르자
호랑이 기운 제압하는 호압사, 사자암, 궁교 지어 대응
관악산 불의 기운 물리친 해치는 서울의 상징으로 우뚝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양에 도읍을 정한 태도 이성계의 고민은 호랑이였다. 설화에 따르면, 태조가 한양에 지은 궁은 족족 무너져내렸다. 호랑이 형상을 한 정체를 모를 기운이 나타나 궁을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군을 동원해서 호랑이를 쫓아보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어디선가 홀연히 노인이 나타나더니 도성 남쪽으로 보이는 호랑이 모양을 닮은 산이 문제라고 했다. 지금의 서울 금천구에 솟은 호암산(虎巖山)을 가리킨 것이다.
|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콘푸로스트 캐릭터 토니(사진=켈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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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은 관악산의 서쪽 봉우리다. 호랑이를 닮은 이 봉우리의 기운이 마을(금천구)을 쇠퇴시키고 나아가서는 한양에까지 나쁜 기운을 끼칠 것이라는 게 당시 풍수였다. 이런 이유에서 태조는 도읍을 옮겨야하는지까지 고민했다. 이때 앞서 노인이 나타나 도읍을 그대로 두고 호랑이 기운을 제압하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1393년 호압사(虎壓寺)가 창건한다. 말 그대로 호랑이(虎)를 눌러서(壓) 기운을 뺀다는 의미다. 호랑이는 꼬리를 제압당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 호압사를 지었다.
| 호압사(사진=금천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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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 남동쪽에 있는 삼성산(동작구) 자락에 사자암(獅子菴)을 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맹수인 사자를 두어서 호랑이를 견제하려고 한 것이다. 호압사 북쪽에는 활 모양의 다리 궁교(弓橋)를 지었다. 활로써 호랑이에 겁을 주려고 한 것이다.
호암산과 삼성산을 품은 관악산도 한양에서 바라보기에는 부담이었다. 풍수상 관악산은 봉우리가 불에 타오르는 화산(火山)이다. 그래서인지 조선 건국 초기 경복궁에는 화재가 잦았다고 한다.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은 관악산보다 해발이 낮아서 불의 기운을 막아내기가 역부족이었다.
| 서울의 상징물 해치가 15년 만에 탈바꿈(오른쪽)한 모습.(사진=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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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해치가 등장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해치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고 좋은 일을 가져다 준다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머리에 뿔이 하나 있고, 목에는 방울을 달고, 몸 전체는 비늘을 덮고, 겨드랑이에 깃털이 달렸다. 한양을 수호하는 해치는 2008년 서울의 상징물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최근 시를 상징하는 캐릭터 해치의 형상을 15년 만에 바꿔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