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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수일투족 '디지털 감시'…직장 내 괴롭힘 막을 제도는 공백 상태

이영민 기자I 2024.06.02 12:00:00

직장갑질119, 5개월간 감시행위 40건 신고
2014년·2022년 관련 법안 임기 만료 폐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노동감시 막아야"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업무용 메신저와 폐쇄회로(CC)TV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이 늘고 있다. 이메일 사찰과 같은 전자감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저촉하고 노동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지만 이를 막을 제도는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일 지난 1월부터 5개월간 업무 공간 내 감시 피해 사례가 40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업무 공간에서 CCTV를 통한 감시나 메신저·이메일 사찰, 기타 프로그램을 활용한 감시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직장인 A씨는 지난 1월 “회사에서 사전 동의 없이 직원들의 사내 메신저 내용을 전부 확인했다”며 “회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메시지가 있는 직원들은 사전 조치 없이 퇴사시켰다”고 비판했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B씨는 “지방 출장이 잦은데 본부장이 사원의 연차와 GPS 기록을 일일이 감시한다”며 “도착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GPS 위치 찍기를 시키고, 의심스러운 사람에게는 화상 통화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해도 (회사에서는) 동의서만 계속 받았다”며 “한국에서는 이런 행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고 되물었다.

회사 이메일이나 사내 메신저를 사용자가 열람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장비의 소유권과 별개로 노동자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은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와 제17조를 바탕으로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이용되도록 할지를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이나 내규로 회사 이메일·메신저의 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관련 기록을 볼 권리를 사용자에게 부여해도 열람의 목적과 범위는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

문제는 노동관계 법령에서 전자 감시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을 규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4년 4월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감시 수단으로 감시 설비를 설치·운영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안전 유지와 도난 방지 등을 위해 사업장에 감시 설비를 설치·운영할 경우 설비 유형과 수집 정보, 이용 목적을 알리고, 다른 용도로 수집된 정보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2년 3월 강은미 당시 정의당 의원도 전자감시 최소화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은 모두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에 대해 김하나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불명확한 목적으로 노동자 개인의 모습이나 동선, 메시지, 이메일 내용을 상시 확인하는 것은 감시행위에 해당된다”며 “구체적인 양태에 따라 민사상 불법행위나 직장 내 괴롭힘 및 관련 법률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사용자가 명확한 인식 없이 감시를 행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현실과 인식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동감시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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