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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부주지 스님’ 해고한 사찰…法 “근로기준법 위반”

박정수 기자I 2024.06.09 10:29:49

문자로 해고통보…스님 품위 손상 등 이유
중앙노동위서 부당해고 인정하자 소송 제기
재단 “임금 아닌 보시금 지급” 주장…법원, 근로자 인정
法 “서면 통지의무를 위반해 절차상 부당해고에 해당”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불교 재단 소유 사찰이 부주지 스님을 문자로 해고한 것은 부당 해고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재단법인 대각문화원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을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각문화원은 1963년 설립돼 상시 약 10명의 근로자를 사용하면서 불교 교리를 보급하는 법인이다. A씨는 2021년부터 대각문화원이 소유한 사찰인 본각사에서 ‘부주지’로서, 사찰행정업무 등을 수행했다.

대각문화원은 2022년 6월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귀하를 본각사의 부주지 및 주지직무대행으로 임명했으나 2022년 6월 9일 본각사를 양천구에 인도했고 재단의 퇴거명령에 불응하고 욕설 등 스님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했으며 또한 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부주지 및 주지직무대행에서 해임하오니 즉각 본각사에서 퇴거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로 해고통보를 했다.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해 기각된 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재심 판정을 받았다. 중노위는 “A씨는 대각문화원과의 사용종속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재심 신청 인용을 했다.

대각문화원 측은 재심판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대각문화원 측은 “A씨에게 매달 지급된 돈은 스님의 종교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보시금’ 형태로 지급된 것이고, A씨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대각문화원 측의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A씨의 업무 내용과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가 사전에 지정돼 있지 않아 A씨가 대각문화원과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A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대각문화원 법인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각문화원은 A씨에게 본각사의 운영과 종무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게 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부주지’는 주지를 보좌해 사찰관리와 사찰행정 업무 등을 수행하는 것인바, 그 직위의 명칭과 기능상 ‘부주지’는 그 업무가 이미 상당 부분 정해져 있는 상태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A씨가 당초 매월 300만원을 지급 받다가 2021년 8월경부터 매월 200만원을 대각문화원으로부터 직접 지급받았는데, 이는 아무런 이유 없이 지급된 것이 아니라 A씨가 사찰관리업무 및 사찰행정업무 등을 수행한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그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문자메시지에 의한 해임통보가 ‘서면’ 통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대각문화원 측이 A씨에게 서면통지를 할 수 없었다거나 서면 통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했다고 볼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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