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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여론조사이야기]②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

박수익 기자I 2013.07.19 08:00:01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 18대 대통령 선거는 아직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왜냐하면 여전히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있었던 각종 논란이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면 불편한 진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깜깜이 기간’이라고 부르는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의 일이었다. 한 야권 고위층 인사가 선거 판세가 궁금하여 연락을 해왔다. 궁금한 사안에 대해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 답변을 해 주었다.

하지만 필자의 설명에 귀기울기보다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역전현상(골든 크로스: 사실은 증시 관련 용어이지만 선거 판세를 설명하는 용어로도 사용됨)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른 하나는 투표 당일의 일이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유명 정치평론가 한 분이 필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내용인즉 야권후보가 출구조사에서 앞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듣는 즉시 어떤 경로를 통해 들었고 지역별 출구조사 현황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질문에 아무런 근거를 대지 못했고 유명 정치평론가는 서둘러 통화를 마감했다.

결과는 다시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두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근거였다. 선거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판세의 정확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조사 분석전문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조사 분석전문가의 근거는 바로 정확한 선거여론조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착각하는 심각한 오해 중의 하나가 선거여론조사를 ‘족집게 도사’나 ‘부채 도사’로 본다는 것이다.

선거여론조사는 당선을 예측하는 조사가 아니라 조사 시점의 선거 판세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당선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투표 당일 날 연령대별 투표율, 여론조사 무응답에 대한 판별분석 그리고 여론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의 지지의향을 추정하고 부재투표자의 지지성향까지 장외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후보들은 현재의 판세를 분석하여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전략을 발굴한다. 한국정치에서 여론조사 분석전문가들이 본격적인 역할을 한 것은 대통령 직선제가 복구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이 단일화되지 않을 경우 노태우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여론조사 분석이 있었다. 결국 야권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민정부 출범은 5년후로 미뤄졌었다.

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시절에는 대통령의 가족 또는 친척 등이 여론조사 분석전문가 역할을 했다. 97년 대선때는 여론조사기관의 전문가들이 대선 캠프에 직간접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 결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에는 여론조사와 분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제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처럼 조사결과의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대선 승리의 소리 없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분석전문가의 역할은 바다 건너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딕 모리스는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이 유권자들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었다. 딕 모리스는 여러번의 여론조사 끝에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승리의 슬로건을 뽑아낼 수 있었다.

2000년 미국대선은 말 그대로 이변이었다. 당선가능성이 높았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텍사스 시골뜨기인 조지 W 부시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변이라고 보았지만 단 한사람은 당선을 확신했는데 그가 칼 로브였다. 수많은 선거여론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미국 유권자들이 원하는 대통령은 귀족이미지가 아닌 소탈하고 인간적인 후보임을 알아냈고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있었다. 모리스와 로브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의 액설로드에 이르기까지 여론분석 전문가는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여론조사 분석전문가들의 활약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만년 야당만 할 것 같았던 노동당을 다수당으로 만들고 토니 블레어가 총리가 된 이면에는 필립 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필립 굴드는 전화여론조사 뿐만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유권자 좌담회를 실시했다. 노동당을 향한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청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노동당은 많은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정당이 될 수 있었고 만년 야당의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필자도 지난 대선과정에서 여론조사 분석결과를 TV와 라디오 그리고 신문지면 등을 통해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가장 큰 소명은 더욱 정확하고 쉽게 유권자들에게 여론조사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간접적으로 필자의 설명이 대선 후보 또는 후보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중요하고 전문성 있는 자료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자부한다. 왜냐하면 정치평론가들의 입을 통해서도, 기자들의 글을 통해서도 정확하고 공정한 여론조사 분석정보를 얻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다사다난했지만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대통령을 만드는 여론분석 전문가들의 역할도 함께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18대 대통령 선거는 현재 진행형으로 국민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 분석전문가로서 할 말이 생각났다. 대통령 선거가 대한민국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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