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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여론조사이야기]③ 착한 여론조사

편집부 기자I 2013.08.06 08: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 사례1 2006년 노무현 정부의 핵심과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정부 부처를 포함해 다수의 조사기관에서 한미FTA 조사 결과를 연일 발표했다. 대체적인 결과는 70%가 넘는 수준의 찬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필자는 매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한미FTA는 어려운 내용인데 일반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찬성으로 응답할수 있었을까. 리서치앤리서치는 그해 7월 13일 한미FTA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조사했다(전국 800명 전화면접조사, 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8%p).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응답자의 72%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했고 한미FTA가 전혀 무엇인지 모르는 응답도 17.3%나 되었다. 90%에 가까운 국민들이 모르는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사례2 얼마전 경상남도는 도의회 의결을 거쳐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경상남도가 공공의료기관을 없애는 것에 대해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급기야 도지사를 국정조사 증인으로 요청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의료원 노조와 경남도의 치열한 공방중에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공개되었다. 문제는 경상남도가 실시한 조사는 폐업 찬성이 더 높다는 것이고 ‘페업철회대책위’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폐업 반대가 더 높았다는 것이다. 같은 이슈에 대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사례3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학생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 언론사와 교육전문지가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서 6. 25 전쟁을 북침으로 인식한 응답이 70%가까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결과에 논란이 일자 조사를 실시한 측에서는 용어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사대상도 자체 온라인 사이트에 가입한 506명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왜 이런 논란이 발생했던 것일까.

제대로 된 여론조사라면 기본적인 세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선 설문가능한 조사라야 한다. 사례1의 경우처럼 한미FTA의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찬성과 반대를 물어보는 것은 심각한 결격이다. 마치 김치나 비빔밥을 먹어보지 않은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맛이 어떤지 물어보는 것과 다를바 없다. 신뢰성 있는 조사가 되기 위해 추가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것은 대표성과 객관성이다.

여론조사의 성격을 말할 때 흔히들 표집조사라고 한다. 왜냐하면 비용과 시간을 고려할 때 현안과 정책에 대해 우리 국민모두의 의견을 물어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표본으로 채집되는 샘플은 전체를 최대한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례3의 경우처럼 자체 온라인사이트의 회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전체 청소년 또는 고등학생을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표본의 대표성이라는 것은 잘 저어진 국맛처럼 국그릇의 어느 곳을 떠서 먹어도 그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성만큼 중요한 것이 설문의 객관성이다.

진주의료원에 대한 상반된 조사결과의 핵심적인 쟁점은 객관적인 설문이 이루어졌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희망하는 결과를 염두에게 두고 응답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설문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설문의 객관성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개인 의견의 총합이다.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모여 다수의 의견 즉 여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조사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정책수립의 기초자료로 중요하게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가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시기는 대체로 선거시즌이다. 각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천과 관련된 경선조사에 일희일비하고 국민들은 몇 대 몇의 조사결과에만 몰입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여론조사는 우리 일상과 관련된 수많은 정책과 정치현안에 대한 여론의 수렴이다. NLL논란과 관련해 다수의 국민들은 일찌감치 대화록 공개도 원치 않았고 이 논란을 지속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착한’ 여론조사를 통해 밝혀왔다. NLL논란과 관련해 ‘착한’ 여론조사는 있지만 이를 따르는 ‘착한’ 정치인은 보이지 않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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