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사실상 전동화 계획을 전면 수정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배터리 업계는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REV) 등 파워트레인 변화에 맞는 배터리를 개발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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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0월 포드와 맺은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한다고 17일 공시했다. 포드와 유럽 내 75기가와트시(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내용이다. 계약 해지 금액은 9조6030억7500만원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전동화 정책이 급변하면서 완성차 기업들도 전기차 생산을 중단하는 등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포드는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중단하고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T3)과 전기 상용 밴 개발도 취소했다. 포드는 차세대 전기차 모델을 EREV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EREV는 배터리로 주행하지만, 주행거리 확장을 위해 소형 내연기관을 발전용으로 탑재한 방식이다.
이같은 급변하는 전기차 전략 탓에 배터리 업계 역시 전기차 배터리 계획 수정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고객사의 전동화 전략 변경으로 특정 차량모델의 개발이 중단됨에 따라 일부 물량의 공급 계약이 해지된 것”이라며 “고객사와 중장기적 협력 관계는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뿐 아니라 SK온 역시 포드에 F-150 라이트닝 및 차세대 전기 상용차 모델인 E-트랜짓에 주력으로 배터리를 공급해 온 만큼, 포드의 생산 중단에 따라 배터리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계는 EREV 배터리 대응 등을 통해 수익성 악화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SK온은 앞서 현대차그룹의 EREV형 배터리 대응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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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동화 정책이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이같은 상황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2035년 신차 탄소 배출량을 100% 감축하는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을 수정해 2021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90% 감축하도록 하향 조정하는 개정안을 공개했다. 회원국 및 유럽의회의 승인 등 절차가 남아 있지만, 2023년 EU가 승인했던 신규 내연차 전면 금지 조치를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유럽 시장을 장악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현지 점유율은 매년 줄고 있다. 이같은 조치로 K배터리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면서 업계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U에서도 ESS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국내 업계는 ESS 수요에 대응하며 수익성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유럽 배터리 ESS 시장은 지난해 22기가와트시(GWh)에서 2030년 135GWh로 연평균 35%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은 유럽 내 공장을 통해 ESS용 배터리 공급망도 확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거점인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일부 라인을 ESS용 리튬인산철(LFP)로 전환해 현지 생산 역량을 구축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도 완성차 업계와의 합작 공장 체제를 종료하고, 단독 공장을 통한 ESS용 배터리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SK온은 최근 미국 포드와의 합작 공장을 단독 공장 체제로 전환해 테네시 공장을 통해 ESS 고객사 물량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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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가 유럽 내 판매 중인 차종의 판매 실적을 보면 BEV보다 HEV의 인기가 높다. 10월 현대차 투싼은 유럽 시장에서 총 6535대 판매됐는데 이중 HEV가 4699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가 1836대 판매됐다. 코나 역시 HEV가 2794대 판매돼 EV 2481대보다 많았다. 같은 기간 기아 주요 친환경차 중에선 니로가 총 3635대 팔렸는데, 이중 HEV·PHEV 판매량이 3430대로 집계돼 EV 205대를 압도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기아의 경우 전기차에 올인하지 않고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친환경차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미국이나 유럽의 친환경 정책 방향성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전동화 전환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목표에는 변함이 없어 친환경차 판매 라인업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