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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심의 논란의 핵심은 전문적인 논의 없이 노사가 협약임금을 결정하듯 심의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최초제시안으로 경영계는 동결을, 노동계는 두자릿수 인상률을 요구하고 그 차이를 흥정하듯 좁혀나간 뒤 공익위원을 포함한 노사공 위원들이 표결로 결정한다. 최임위에 노사 위원들이 포함돼 어느 정도의 협상은 필요하지만 각자의 주장만 거듭하다 보니 노동 및 거시경제학적인 심층적 논의가 설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이원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미래세대특별위 위원장은 통화에서 “최저임금은 경제 상황을 고려해 노동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인데, 매년 노사가 힘겨루기를 하며 협상으로 결정한다”며 “최저임금을 이렇게 정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 역시 “최저임금을 일반 회사에서 임금협상하듯 정하고 있지만 이렇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허 원장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엄청나게 많은 것을 고려하는 것처럼 최저임금도 그래야 한다”고도 했다.
최임위가 지난해 펴낸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보고서를 보면 영국의 최저임금 노사정위원회인 ‘저임금위원회’는 매년 100회 정기회의를 열어 조사, 심의를 거쳐 권고안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위원회 결정 근거를 설명한다. 특히 위원회에 참가하는 사용자와 노조 출신 위원들은 각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합리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보고서는 소개했다. 반면 한국은 올해의 경우 지난 9일과 11일 두 차례 만나 12일 새벽까지 회의를 진행해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이 투명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이러한 객관적 지표가 적절하게 반영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6년(2017년도 액수 결정) 최임위는 유사근로자 임금 인상률(3.7%), 소득분배 개선분(2.4%), 협상 배려분(1.2%)을 근거로 7.3% 인상을 결정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과 2018년(2018년 및 2019년도 액수) 각각 16.4%, 10.9% 올리더니 2019년(2020년도 액수)엔 2.87%로 급격히 낮췄는데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 결정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올해 최임위는 심의촉진구간(1만~1만290원)을 제시하며 상한선(1만290원) 근거로 ‘국민경제 생산성 상승률 전망치(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취업자증가율)’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촉진구간 상한선 근거는 지난 2022년 당시엔 2023년도 액수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이 불과 2년 뒤엔 심의촉진구간 상한 기준이 된 것이다. 이에 반발한 민주노총 근로자위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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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위는 정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이인재 최임위원장은 지난 12일 새벽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의 결정시스템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제도 개편에 대한 심층 논의와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2월 최저임금 제도 개편안을 마련한 바 있다. 최저임금 결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2017년 말 구성한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해 내놓은 안이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최저임금 구간설정 위원회’와 ‘최저임금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게 핵심이다. 구간설정위는 공익위원들로만 구성해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설정하고, 지금처럼 노사공 위원 동수(각 9명씩 총 27명)로 구성된 결정위가 상·하한선 범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자는 내용이다. 이 개편안은 20대 국회에도 발의가 됐으나 통과되지 않고 자동폐기됐다.
이에 대해 이기권 전 고용부 장관은 자신의 저서 ‘노동시장 빅스텝’에서 “최저임금 결정에서 반복해 온 소모적인 논쟁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는 대안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반면 고용부 장관을 지낸 이채필 일자리연대 상임대표는 통화에서 “갈등만 배로 증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재준 원장은 최임위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허 원장은 통화에서 “최임위가 비상임 위원제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위원들이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금통위는 임기가 있는 상임위원으로 구성돼 있고 제반 경제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토의와 연구지원을 받는다. 최임위도 이렇게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