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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식은 노성철 연세민주동문회장의 열사 연보 낭독으로 시작해 김익태 이한열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의 인사말, 박주정 진흥고 총동창회장 추모사 순으로 진행됐다.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현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상호 민정수석은 해마다 추모식에 참석했지만 올해는 개인 일정으로 불참했다.
박 총동회장은 “고인은 3년 후배지만, 존경스러운 인물”이라며 “고인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12·3 비상계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이 흘린 피 덕분에 민주주의 반석을 세우게 됐는데, 재차 비상계엄이 터져 안타깝다”며 “개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고인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유족 대표로 추모식에 참석한 이 열사의 큰 누나 이숙례씨는 “동생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공고히 하기 위한 개혁 작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 이한열 열사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독재 타도와 5·18 진상규명을 외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1987년 7월 5일 사망했다”며 “그의 희생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에도 국가권력이 국민을 공격하는 폭력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참여하는 집단 지성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는 국민주권 정부를 실현하겠다”며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해체하고, 실질적인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 정책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열사는 지난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5분쯤 연세대 교문 앞 시위에 나섰다가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 혼수상태에서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이 세상을 떠난 시간은 7월 5일 새벽 2시 5분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