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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 탄종코스(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십(총상금 150만 달러) 최종 4라운드. 4타 차 공동 8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박성현(26)은 이날 무려 8언더파 64타를 몰아치며 짜릿한 역전 우승을 만들어 냈다.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를 적어낸 박성현은 호주교포 이민지(23)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시즌 두 번째 출전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 번의 위기를 잘 넘겼고, 긴박했던 승부처에서 나온 대담한 경기 운영이 우승의 발판이 됐다. 8번홀. 12언더파로 이민지와 공동 선두였던 박성현은 이 홀에서 뜻밖의 실수가 나왔다. 파5 홀이었기에 장타자 박성현으로서는 파로 지나가도 만족할 수 없는 홀이었다. 그러나 박성현은 이 홀에서 사흘 내내 경기를 잘 풀어가지 못했다. 1~3라운드 동안 버디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날도 발목을 잡았다. 버디가 필요한 상황에서 보기를 하면서 뒷걸음쳤다. 이민지에게 선두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났다.
타수를 잃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던 건 우승의 첫 번째 발판이 됐다. 오히려 실망하지 않고 자신감을 잃지 않은 게 후반 들어 버디를 몰아칠수 있는 힘이 됐다. 박성현은 “보기가 나왔지만, 어려운 상황이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 이후에도 홀이 많이 남아 있었고 또 버디를 많이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고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순간을 돌아봤다.
위기 뒤 기회가 왔다. 후반 시작과 함께 10번홀에서 쉽지 않은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다시 추격에 불씨를 지폈다. 13번홀(파5)버디 이후 14번홀(파4)에서의 연속 버디는 박성현표 ‘공격 골프’ 이른바 ‘닥공 골프’의 진수를 보여줬다.
286야드로 짧게 조성된 이 홀에서 박성현은 드라이버를 꺼내 1온을 노리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린 앞쪽 260야드 지점부터 벙커가 자리하고 있어 작은 실수라도 나오면 버디를 장담할 수 없었음에도 박성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티샷은 벙커를 넘겨 떨어졌고 그린 앞에서 멈췄다. 2타째로 공을 홀 바로 옆에 붙였고, 가볍게 버디를 챙겼다.
박성현은 “1온을 노릴 수 있는 홀이었고, 드라이버를 치면 딱 맞겠다고 생각했다”며 “과감하게 친 공이 그린 앞까지 날아갔고 프린지에서 쳐서 버디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승부처에서 만들어낸 버디는 박성현이 선두로 치고 나가는 결정타가 됐다. 뒤에서 경기하던 이민지는 같은 홀에서 티샷이 벙커 근처의 깊은 러프에 빠졌고, 40야드 정도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3타째 공도 홀에 미치지 못하더니 파 퍼트마저 빗나갔다. 가장 짧은 홀에서 보기를 한 이민지는 실망감이 컸고, 이후 버디를 추가하지 못했다.
이때까지 선두로 나선 상황을 모르고 있던 박성현은 16번홀(파5)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이번에도 장타가 돋보였다. 박성현은 이번 대회에서 드라이브샷 평균 283야드를 날리는 위력적인 장타를 뿜어냈다. 3라운드 때는 무려 291야드까지 치솟기도 했다. 4라운드에서도 281야드를 날릴 정도로 지난해보다 더 강력한 장타를 뽐냈다. 마지막 파5 홀에서 어렵지 않게 버디를 추가한 박성현은 2타 차 선두로 달아났고, 그대로 경기를 끝내면서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최종일 버디 9개에 보기 1개로 막아내는 무결점 플레이를 펼친 박성현은 “오늘 정말 한 샷 한 샷에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모든 샷이나 퍼팅이 생각대로 잘 따랐다”며 “하루 정도는 몰아치는 날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마지막 날 나와 준 것 같아서 굉장히 기쁘다”고 이날 경기에 만족했다.
시즌 첫 승이자 통산 6승째를 달성한 박성현은 슬로스타터라는 징크스도 털어냈다. 2017년 LPGA 투어 진출 첫해 14번째 대회에서 우승을 신고했고, 지난해엔 8번째 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는 2번이나 컷 탈락하는 등 부진했다. 올해는 2월 처음 출전한 혼다 타일랜드에서 공동 21위로 출발해 두 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시즌 첫 승을 낚았다.
시즌 5승 목표에도 탄력을 받게 됐다. 박성현은 지난 2월 시즌 첫 출격을 앞두고 메이저 대회 포함 5승을 목표로 내세웠다. 박성현은 “이렇게 우승을 빨리하게 될 줄 몰랐다”며 “해마다 시즌 초반 출발이 좋지 못했는데 올해 이렇게 빨리 우승해 기쁘다. 이제 시즌 초반인 만큼 더 멋진 플레이로 보답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