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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는 우리 영화사의 산증인이다. 안성기는 13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은 소회를 밝혔다. 역사의 한순간을 담아내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안성기의 작품 세계만으로도 현대사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개발시대의 명암을 담은 ‘바람불어 좋은 날’을 비롯해 연좌제를 소재로 한 ‘칠수와 만수’, 한국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본 ‘남부군’, 베트남전의 아픔을 조명한 ‘하얀 전쟁’ 등 출연작마다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연기할 때는 영화가 사회적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어요. 이념 문제라든지, 민주화라든지 사회 전체의 토론이 영화 속에 용광로처럼 녹여졌죠.”
안성기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대중과 함께하면서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도 얻게 됐다. 김기영·이장호·배창호·임권택·강우석·이준익 감독 등 한국 영화를 이끌어간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한국 영화 성장의 한 축을 견인했다. 최근 들어 영화를 벗어난 일상을 통해 대중과 접점을 찾기 시작했다. 19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벌써 20년 넘게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영화로 받은 사랑을 대중에게 되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영화배우로서 영화를 통해 그 시대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의미있었습니다. 또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로 유니세프에서 받은 수혜를 갚는 데 유니세프 친선대사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안성기는 여섯 살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10대 중반까지 아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10여 년 공백을 가진 뒤 1978년 성인 연기자로 변신해 ‘바람불어 좋은 날’(감독 이장호·1980년)로 본격적인 이름을 알리게 됐다. 안성기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는 연기 창작에 몰두하겠다는 각오다.
“대중의 시각이 허용하는, 딱 그 부분까지 보여지는 게 영화입니다. 다른 장르와 달리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영화의 특성상 모든 매체의 끝 부분에서 시대상을 열어놓은 것이죠. 검열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억압된 시대를 지나고, 모든 것을 담아내게 된 영화의 매력에 더 빠져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배우로서 후배에게도 관객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연기와 연기 외의 어떤 것으로, 보답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안성기는 13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 展’에 참석했다. 안성기는 공동 인터뷰에서“자꾸 획을 긋는게 싫어서 부담없이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쩍 넘어가는 행사가 되길 바랐는데 막상 여니까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안성기는 “그동안 5~10세 젊은 역할을 해서 실제 나이보다 젊게 보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데뷔 60주년이라고 하니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것 같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번 상영회는 그가 보여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 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변천사 또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상영작 27편은 ‘깊고 푸른 밤’(배창호·1985), ‘남부군’(정지영·1990) 등 그의 진지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부터 한결같은 순애보를 보여 준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1987), 재치 넘치는 코미디언으로 등장한 ‘개그맨’(이명세·1988) 등이다. 또 ‘모정’(양주남·1958), ‘하녀’(김기영·1960)와 같이 그가 아역 시절 참여했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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