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 사인이 나오고 출입문이 잠기자마자 경기가 시작됐다. 총길이 190m의 거대한 ‘슈퍼파이프’의 가장 높은 언덕 뒤로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가 등장했고 마치 공중곡예를 하듯 점프했다. 그리고 이를 누구보다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곳은 21일 강원도 휘닉스평창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FI그룹-이데일리 스노우페스타 대회 심사위원실이다. 일명 ‘저지룸’이라 불린다. ‘레프트’ ‘그랩’ ‘스위치’ 등등… 선수들이 기술을 펼칠 때마다 회전방향과 회전수, 기술명이 호명됐다. 그리고 총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각자의 점수를 기록했다. 점수는 곧바로 경기장에 있는 전광판에 기록됐다. 현장에 있는 진행자가 선수의 이름과 점수를 전달했다.
경기장 못잖게 심사위원실의 열기도 뜨겁다. 현장을 리드하는 박희진 ‘헤드저지’를 비롯해 다국적 심사위원진은 선수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심사위원 중 슬로베니아 출신의 루르 불크 심사위원과 일본에서 온 치호 타카오는 올림픽 심사위원까지 가능한 톱랭크 심사위원이다. 화려한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들도 감탄사가 나왔다. 실수가 나올 때는 탄식이 흐르기도 했다.
외부와의 접촉은 차단했다. 경기가 시작된 이후부터 최종 점수가 공표될 때까지 심사위원실은 폐쇄공간이나 마찬가지다. 심사위원은 경기장을 눈으로 직접 보거나 외부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박희진 ‘헤드저지’는 “평가가 진행되고 있을 때는 외부와의 접촉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만약 누군가 노크를 한다고 해도 심사위원의 평가가 완전히 종료가 된 후에 문을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 경기에 대한 심사위원진의 채점은 객관적이고 작은 부분 하나까지 체크한다. 선수가 어떠한 방향으로 얼마나 회전했는지, 점프 동작 도중 스키를 잡는 기술인 ‘그랩’을 펼칠 때는 어떤 부위를 어떤 손으로 어떻게 잡았는지에 따라 점수가 다르다. 착지는 어땠으며 실수가 있었는지도 확인한다. 본선 1차전 경기에서 노아 보우먼 선수가 착지 중 바닥에 살짝 손이 닿자 심사위원들은 ‘터치’라 외쳤다. 이들의 눈을 속이기는 힘들어 보였다.
원활한 심사를 위한 경기장과의 소통은 필수다. 박희진 ‘헤드저지’는 무전기를 통해 경기 진행을 조율하고 출전 선수를 확인했다. 심사위원의 심사 진행 상황을 현장을 전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긴장된 분위기는 경기 종료 및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모두 마친 뒤에야 풀어졌다. 심사위원진 역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냈다. “멋진 경기였다”는 심사위원의 평가도 들렸다.
이날 경기는 최고점수 92.20을 받은 시몬 다르투아가 차지했다. 2위는 노아 보우먼, 3위는 브렌든 맥케이가 올랐다. 모두 캐나다 출신이다. 한국의 김광진 선수는 4위를 차지하며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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