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산자, 대동여지도’, ‘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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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와 ‘밀정’이 여름 대작의 바통을 이었다. 7일 맞붙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밀정’은 100억원대의 대작인데다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이어서다. 두 작품 모두 역사 왜곡 논란이 우려됐던 점도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달라진 강우석 김지운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밀정’은 감독의 스타일을 담고 있지만 또 다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30년 가까이 한국영화계를 이끈 강우석 감독의 20번째 연출작. 강우석 감독은 1989년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미스터 맘마’ ‘투갑스’ ‘공공의 적’ 시리즈 등 많은 작품을 흥행시켰다. 2003년작 ‘실미도’는 한국영화로는 처음 천만 관객 동원했다. 강우석 감독은 한국영화 흥행의 역사와 함께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강우석 감독이 2013년 ‘전설의 주먹’ 이후에 건네받은 박범신 작가의 원작 소설 ‘고산자’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 강우석 감독은 “처음 읽었을 때에는 영화화는 엄두도 못 냈다”며 “책을 덮고서도 계속해서 생각났다. 나를 너무 괴롭혀서 ‘인연인가 보다’라는 생각에 박범신 작가에게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그의 첫 사극 연출 영화다.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의 굴곡진 인생을 조명했다. 대동여지도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 김정호’보다 지도가 좋아서 지도에 미친 ‘인간 김정호’를 부각시킨다. 감독 특유의 유쾌함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웃음보다 의미에 더 방점이 찍힌 진중한 작품이다. 오프닝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절경은 영화의 ‘히든 카드’. 차승원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고 말한 백두산 천지는 보정을 전혀 하지 않은 100% 실제 모습이다.
| 강우석 감독(사진=한대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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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은 김지운 감독이 두 번째 할리우드 영화를 준비하다가 보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라스트 스탠드’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성공시키며 장르의 대가로 입지를 굳혔다. ‘밀정’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를 배경으로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과 조선인 일본 경찰 황옥 경부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항일과 친일,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인물들을 통해 불운한 시대를 화면에 담았다. 인물들이 펼치는 회유, 교란 등의 심리전이 액션 못지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김지운 감독은 서구 냉전시대 스파이 걸작처럼 ‘밀정’도 차가운 느낌을 풍기는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냉전시대는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이었고 일제강점기는 주권회복을 위해 선열들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시대였다”며 “만들면서 의도와 다르게 영화가 자꾸만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미장센이나 영화 속에 삽입된 재즈와 클래식 음악 등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배어있지만 “영화적 자의식을 강요하지 않고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내려놓고 쫓아갔던 영화다”며 기존과는 다른 느낌으로 완성된 영화임을 알려줬다.
| 김지운 감독(사진=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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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作, 늘 따라붙는 역사왜곡 논란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밀정’은 김정호와 황옥이라는 실존인물을 그린다.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이 그렇듯 두 작품도 역사 왜곡 논란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나 ‘밀정’이 역사 왜곡 논란이 우려되는 것은 영화가 다루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거나 지금까지도 인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서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실측을 안 했다는 설도 있고 김정호의 이야기는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을 폄훼하고 일제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조심한 게 식민사관이다”며 김정호와 관련된 사료, 논문을 철저히 고증을 했다고 밝혔다.
‘밀정’은 논란이 일 것을 염려했는지 실존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정출 장채산 김우진 김장옥은 황옥 김원봉 김시현 김상옥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 황옥은 1920년대 조선총독부 등 주요 통치시설과 총독 등 총독부 요인을 암살하는 의열단의 공작에 가담, 체포됐던 인물이다. 황옥은 지금까지도 의열단원인지 일본의 밀정인지 말이 많다. 이정출에 대한 묘사가 황옥에 대한 판단으로 비칠 여지가 없지 않다.
| ‘고산자, 대동여지도’ 김정호(차승원 분)와 ‘밀정’ 이정출(송강호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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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덕혜옹주’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개봉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논란이 한창이다. 실제 사건인 의친왕 망명 작전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친왕 망명 작전과,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처럼 표현된 부분 등이 문제됐다. 이를 놓고 일부 학계는 “영화가 허구라고는 하지만 역사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되게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관객도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분별력이 없지 않다”며 “역사 왜곡 논란이 이는 배경에는 그만큼 역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덕혜옹주나 김정호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