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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10일 오만과의 1차전을 1-0으로 이긴 데 이어 13일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서도 1- 0 승리를 거두면서 승점 6점을 따냈다. 호주와의 조별리그 최종전 결과에 관계없이 최소한 조 2위를 확보, 8강행을 확정했다.
하지만 2연승에도 불구, 다가온 감정은 패배 이상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특히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5위 쿠웨이트와의 경기는 ‘이겼지만, 이긴 것 같지 않은, 이기고도 전혀 기쁘지 않은 결과’였다.
전문가들이나 팬들의 반응을 떠나 슈틸리케 감독 스스로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쿠웨이트전을 마친 뒤 “한국은 오늘부로 우승후보가 아니다”라며 “쿠웨이트가 여러 면에서 더 나은 경기를 했다. 승리한 것은 매우 운이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점유율 축구’를 강조했다. ‘공을 많이 가져야 득점 기회도 높아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쿠웨이트전은 점유율에서 쿠웨이트를 압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전은 46.4%로 쿠웨이트에 밀리기까지 했다.
상대가 우승후보팀도 아니라, 이번 대회 출전국가 가운데 FIFA 랭킹이 두 번째로 낮은 약체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컨디션이 안 좋은 주전들 대신 벤치멤버들이 대거 출전했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그라운드 사정도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을 지우기는 어렵다. 이 정도 실력으로 과연 8강 토너먼트에서 제대로 살아남을수 있을까 우려될 정도다.
당장 다가올 호주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걱정스럽다. 호주는 앞서 한국이 싸운 오만, 쿠웨이트와는 수준이 다른 팀이다. 호주는 조별리그 2경기에서 각각 4골씩, 총 8골을 넣는 놀라운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다. 2경기 2골에 그친 한국과 크게 대조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한국 축구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낸 뒤 홍명보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벽안의 외국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영입했다.
만약 한국 축구가 잘 흘러갔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구원투수로 올 이유가 없었을 터.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이라는 목표를 안고 대표팀 감독직을 맡았지만 이제 겨우 4개월 남짓 됐을 뿐이다. 팀을 완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지금 보여지는 모습이 곧 한국 축구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다면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도 불구, 승리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승리를 거두고 조별리그를 통과했다는 것은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초반부터 열을 올리다 뒤로 가서 흔들리기보다는 처음에 어렵더라도 경기를 치를수록 훨씬 낫다.
슈틸리케 감독도 “대회를 길게 볼 때 1-0으로 근소하게 이기고 어렵게 경기한 게 오히려 5-0 대승을 거둔 것보다 낫다.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고 우승 후보 얘기가 나오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차근차근 실수를 통해 배우고 단점을 채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17일 호주 브리스번에서 열리는 호주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은 조 1위를 가리는 승부다. 동시에 한국이 난적들이 수두룩한 8강 토너먼트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확인할 절호의 기회다. 이미 8강이 확정된 만큼 경기 내용과 단점 보완에 더 집중할 있을 전망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쿠웨이트전 승리로)승점을 얻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며 “앞으로 상당한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려운 경기를 했는데 좋은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